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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좀 Mar 26. 2020

우주에서 꽃을 키우는 사람

문득, 그리고 좀 그런 날



꿈이 없는 사람을 비웃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 씨가 그의 노래에서 부르짖었던 것처럼, “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유치원에서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거나, 명절에 오랜만에 뵌 친척 어른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매번 바뀔지언정) 나는 자신 있게 내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막연히 과학자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직업으로써의 꿈을 갖기도 했다. 그때 그 꿈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정말로 내 인생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정작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과정에서, 나는 점차 꿈이 아닌 현실을 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인의 영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나 스스로가 꿈이 아닌 현실을 쫓게 되었다. 인생의 등대와도 같았던 꿈보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현실이 더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꿈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다시 말하면 꿈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찾지 못할 만큼 희미해져 버렸을 때, 나는 그 꿈을 우주로 보내버렸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어디엔가 존재하는 그곳. 내가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갈 수 있는 그곳. 그곳에 내 꿈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 여전히 그 꿈을 키우고 있다. 사실, 이곳에 계속 두었다가는 없어져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피시킨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의 꿈은 여기에서 보다 더 선명해 보이기도 한다.


난 우주에서 계속 꿈을 키우려고 한다. 그게 이 현실에서가 아니라서 비웃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 버린 다음에야, 거기서라도 잘 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지금의 나를 보면서 꽤나 비웃기도 했겠다. 하지만, 타임머신이 개발되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찾아오는 것 보다야, 로켓을 타고 우주에 가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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