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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Nov 15. 2020

나의 첫 시 창작 수업

시를 쓰는 사람이 되는 방법



<책장으로 만든 침대>

- 선의


뒷통수가 간지러워요

후두부에 곧 비가 오겠네요

오늘 비가 온다면 꼭 어깨까지는 적셨으면 좋겠어요


소나무로 짠 책장에 코를 박아봅니다

아는 냄새가 나요

폭우가 지나간 자리에 온몸으로 물을 머금고 버텨내던 나이테가

새벽 내내 울먹이던 쿱쿱한 방치의 냄새

잠시 제 어깨를 잡아 주실래요


당신의 왼쪽 팔과 나의 뒷목이 교차하던 순간

견고하지 못한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헐렁한 매듭은 풀어지기 마련

당신이 떠난 빈자리에 남겨진 시집 한 권을 탓하지는 않겠어요

바들바들 떨리는 두 무릎은 제 천성입니다


이해받지 못했지만 그건 그대로 좋았습니다

보여지는 만큼의 범위가 되고 싶었어요

입술 밖으로 나오는 문들이 단어로 쪼개지고 음절로 흩어지고

끝내 내 발가락에 내려앉았다가 핏줄을 타고 올라와 아랫배에 멈추었죠

충분히 괜찮은 일이었어요

당신의 시는 배꼽으로 조용히 음미하였습니다


이미 다 외운 시들은 구태여 머물 집을 필요로 하지 않겠지요

책장에서 오래된 시를 벌컥벌컥 쏟아냅니다

엎드린 책장에선 당신의 등 냄새가 나요

매일 밤 손톱으로 당신의 등을 긁어주었는데

손톱을 너무 물어뜯다 보니 이제 나에겐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지만요


고양이가 숲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만

여기 누워 있을게요

나이테의 한 줄이 줄어들면 나를 깨워주세요

그전에 또 비가 와야 한다면

기쁘게 밟히며 버텨보겠습니다




올 여름, 수업은 모집 정원인 열여섯 명을 다 채운 채로 시작되었다. 사십 명은 앉을 수 있을만한 교실에는 거리 두기를 위해 학생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앉았다. 코로나고 더위고 뭐고 모르겠고, 시라는 것이 꼭 쓰고 싶어 여기에 왔다는 사람들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를 잘 이해하며 읽지도 못하면서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시를 읽는 건 머리로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그러니 어쩌면 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가슴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이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첫 수업부터 습작시를 제출하고 서로의 작품을 합평했다. 합평 방법은 이러했다. 각자 써온 시는 미리 수강생 인원수만큼 프린트해온 후 수업이 시작하면 모두에게 나누어준다. 그 후, 강사가 한 명씩 호명하면, 해당 수강생은 자신이 써온 시를 낭독한다. 그 후 다른 수강생들이 한 명씩 그 시에 대한 합평 의견을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강사가 의견을 덧붙인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작가에게는 발언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자리는 오로지 타인의 감상 의견을 듣는 자리이다.


수강생들의 구성은 다양했으나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수강생, 그리고 전공하지 않은 수강생. 노련한 전공생들은 꽤 그럴듯한 습작시를 낭독했고, 나는 그 시에 관해 어떤 의견을 내어야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나에게는 아직 시 보는 눈이 없다. 만약 습작생의 시와 등단한 시인의 시를 두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게 된다면, 나는 그 중 시인의 시를 가려낼 수 있을까?


전공생이 아닌 수강생 중에는 단 세 줄짜리 시를 제출한 사람도, 지난 경험에서 느낀 감상을 짧은 문장들로 옮겨온 사람도, 사랑의 감정들을 무작정 나열한 사람도 있었다. '현대시'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작품들은 모두 내가 그 동안 읽어 왔던 '현대시의 틀이나 구조, 형식(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의 시를 향한 전공생들의 합평 의견은 날카로웠고, 혹독했다. 나는 구태여 매번 손을 들어가며 내가 시를 읽고 느낀 감상과 매력을 어설프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시 창작을 격려하고 좋은 말만 해주는 무료 소모임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시 <책장으로 만든 침대>는 '표현이 좋다'는 의견과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의견을 받았다. 내가 구상했던 이야기는 전달이 되지 않았다. 수업에서는 작가의 변을 공유할 기회가 없었기에, 여기에라도 마음 편히 공유해본다. 이 시는 '시를 쓰는 애인과 헤어진 후에, 남겨진 사람이 그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시인과 연애를 해본 적이 없기에, 그 감성을 최대한 상상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럴듯한 표현을 지어내는 데 치중했다. 문학 작품을 쓰는 일은 - 그것이 시이든 소설이든 -결코 에세이가 아니며 굳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 경험이 아닌 일을 적어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나에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고작 두 번의 수업에 참석한 후, 나는 남은 수업들을 환불받아야 했다. 또 새로운 시험관 시술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집 앞 분리수거장에조차 나갈 일 없는 완전한 칩거 생활에 들어선 것이다. 수업을 나가지 않게 되면서, 더 이상 시도 쓰지 않게 되었다. 올해 여름,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시 한 편을 쓴 사람이 되었다.


산책하다가 문득, 새벽에 책을 읽던 중에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문득, 차가워지는 바람에 겨울 옷을 꺼내다가 문득 그렇게 시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내일 장을 보러 마트로 가는 길에 문득 기가 막힌 시 한 편이 내 머리 속에서 운명처럼 떠오를 가능성은 없다는 것. 오히려 책상 앞에 앉아 어떻게든 머리를 싸매어 두 번째 시를 쓰고, 세 번째 시를 쓰고, 서른 번 여섯번 째 시를 쓴 사람이 되었을 때, 그때 겨우 시를 쓰는 사람이 되는 로망이 실현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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