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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Nov 01. 2021

살찌는 체질의 임산부의 세 가지 행운

임신을 하면 보통 몸무게가 증가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손도 발도 하나도 붓지 않은 상태로, 예정일을 6주나 남긴 34주 차에 임신 전 대비 20kg이나 증가하는 임산부가 많을까? 쌍둥이를 품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한민국 임산부 통계치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그런 통계가 실제로 있는지도 미지수다), 흔한 케이스는 아닐 것이라고 예상한다.


근거는, 이맘때 주수쯤에 맘카페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몸무게, 얼마나 느셨어요?" 류의 글에 달린 댓글들이 첫 번째고(보통 많아봤자 10kg던데), 진료가 있는 날 병원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른 임산부들이 두 번째고(어쩜 나만 빼고 다들 배만 뽈록 나오는지), 지금 내가 거의 대부분의 임신 & 출산 정보를 얻고 있는 10,11,12월생 초산 소띠맘 오픈채팅방에 함께 하고 있는 임산부들이 세 번째다(나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찐 임산부가 12kg, 독한 관리로 여태 3-5kg만 찐 임산부도 있다),.


(*열달후에 라는 앱에서 보여주는 정보에 의하면, 34주차의 엄마는 체중이 대략 9.12k~13.22kg 정도 증가한다고 한다. 나는 이걸 14주차에 이미 달성했다.)


나를 종종 놀라게 하는 건 인스타에 올라오는 다양한 컨셉의 만삭 사진들인데, 그중에서도 상체만 가리는 검은색 바디수트로 아기를 품은 배만 강조하고, 허벅지부터는 맨살을 그대로 드러냈는데도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 하나 없이 다리가 길고 가늘게 쭉 뻗어 있는 사진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소유한 가장 큰 치수의 와이드 청바지를 마지막으로 입었던 게, 아마도 10주차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어떤 바지도 들어가지 않아서 쭉 펑퍼짐한 원피스만 고집하고 있다.



나는 원래도 살이 쉽게 찌고 잘 빠지지 않는 체질이다. 공교롭게도 내 주위에는 체질적으로 마른 친구들이 많은데, 함께 식사를 할 땐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잘만 먹다가도 작은 생초콜릿 열여섯 조각이 있는 로이스 초콜릿 한 상자를 사무실 책상에 두고 며칠에 걸쳐 나누어 먹는다든가, 봉지 과자 한 봉지를 혼자 다 먹지 못한다든가 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패턴을 보이곤 한다. 어쩌다 함께 미식 탐방을 즐기는 여행을 다녀와서 사이좋게 3kg씩 찌고 난 후면, 며칠 후 친구 혼자만 장염에 걸려 이틀도 안되어 여행 전보다 몸무게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는 그 3kg를 빼려면 한 달은 고생해야 했기에, 아파서 얼굴이 핼쑥해진 친구를 보며 철 없이 부러워했고.


나는 더욱 빡세게 운동해서 근력을 키울 생각은 없이, 그저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내 체질을 원망했다. (아 물론 정말 물만 마시지는 않았지. 살이 쉽게 찌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 인풋 > 아웃풋)




그런데 임신을 하고서 알았다.

내가 이 살 쉽게 찌는 몸의 덕을 보기도 하는구나!

비록 몸무게는 남들의 두 배로 늘어났지만, 오히려 지금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보며 상대적으로 편안한 임산부 생활을 즐기고 있다. 참 기묘면서도 웃픈 일이지.


그럼 대체 어떤 이득을 보고 있는 거냐 하면 임신 과정의 큰 고비 세 개를 덕분에 무사히 통과했다는 점을 이제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고비는 입덧이었다.

나는 임신 16주차까지 생수를 마시지 못해 포카리스웨트를 마셔야 했던 걸 제외하고 (포카리스웨트 많이 마셔도 살찐다던데...) 임신 중에 못 먹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고, 구토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깜깜한 밤이 되면 속이 쓰리기는 했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삼시 세 끼와 중간중간 간식을 다 먹은 후였다. 되려, 초기에 유산기(출혈)가 보이고 머리가 자주 아프고 몸이 늘 피곤했기에, 하루 22시간 누워 생활하며 인스턴트와 배달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평생 스스로 금해왔던 배달앱을 임신하고 나서 처음 다운로드 받았다. 결과적으로 몸이 가벼워 날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그 흔한 입덧(특히 토덧)을 거의 겪지 않고 무사히 넘어간 것이다.



두 번째 고비는 임당(임신성 당뇨)이었다.

나는 임당 검사를 27주차에 받았다. 임당 검사는 임산부로서 처음 겪게 되는 검사는 아니지만, 어쩌면 가장 많이 화제가 되는 검사일 지도 모르겠다. 12주차, 16주차에 하는 기형아 검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심각성이 크지만 별일 없다는 결과를 받을 확률도 그만큼 높은데(감사하게도 나 역시 무사히 넘어갔다), 이에 비해 임신성 당뇨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찾아오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임산부 오픈채팅방에서도 19명 중 5명이 재검사를 받았고, 그중에 3명이 임당 판정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의 임신 전 몸무게라든가 임신 후 체중 증가량이든가 평상시 식습관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이 나타난 결과였다.


그 와중에 나는 매일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도 왜인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임당이 되면 과자도 못 먹고 과일도 줄여야 하고 매우 엄격하게 식단을 지켜야 하니, 여기서 더 살이 찌지는 않을 거고 어쩌면 살이 더 빠질지도 몰랐다 (실제 임당 식단을 한 후에 임신 중기에 '건강하게' 7kg가 빠졌다는 후기도 있었다). 그동안 증가한 몸무게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도무지 나 스스로 식욕을 자제하기가 어려웠으니 어쩌면 강제로 임당 식단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잠시 했다. 그러나 나는 낙관적이었다.

운명은 나를 더욱 더 살찌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리라.


나는 임당 검사 전날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었고, 다음날 매우 안정적인 수치로 검사를 무사통과했다.



세 번째 고비는 조산기로 인한 입원이었다.

나의 자궁 경부 길이는 27주 차에 1.9cm를 찍었다. 자궁 경부 길이가 짧으면 조산 위험이 있다고 보며, 보통 24주-28주의 안정 범위는 3.5~4.0cm,  32주~36주의 안정 범위는 3.0~3.5cm라고 한다(출처는 맘카페에 누군가 댓글로 올려준 표이기에 의학적 신빙성은 보장할 수 없지만). 우연히 동네 병원에서 1.9cm라는 수치를 확인했던 날, 나는 겁이 나서 몸을 덜덜덜 떨며 급히 대학 병원 분만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자궁 수축 검사 결과, 나는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수축이 거의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으며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되 무리만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며 귀가 조치됐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인터넷 카페에 접속해서 비슷한 케이스들을 검색해봤다. 다른 임산부들은 2.5cm 정도 길이임에도 수축이 보여 입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병원 생활을 끔찍이도 단조롭고 불편해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심심한 저염식 병원식은 정말이지 맛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또 한 번 고비를 통과하고, 집에 돌아와 든든하게 몸보신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이쯤 되면 34주차에 총 20kg를 찐 일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살 잘 찌는 이 지긋지긋한 체질 - 아니 운명 - 덕분에 어찌 되었든 나는 꽤 순탄하게 임신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뱃속 아이만 건강하면 됐지 뭐. 이미 쪄버린 살은 출산 후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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