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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by 정윤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를 봤다.

영화의 주인공 만수(이병헌분)는 공장에서 기계 부품처럼 일하다가 어느 날 해고를 당한다. 만수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버려진 부품이다. 만수는 해고된 자신의 남성성이 빼앗긴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치가 매장된 것 같은 충격에 휩싸인다. 25년 동안 가족을 위해서 일해왔던 직장에서 버려진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구실을 잃어버린 것처럼, 자괴감에 빠져서 점점 삐뚤어진 사고를 갖게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직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만수.

이 영화는 해고되어 무력감이 든 만수에게 관객이 동일시하는 한편, 만수에게 거리 두기를 하며 관찰하는 관찰자적 시점이 되게 한다. 관객들은 만수에게 공감했다가 냉정하게 멀어졌다가,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럴 수밖에 없나, 꼭 저래야 하나? 저러지 말아야 할 텐데, 이제라도 멈췄으면 좋겠다.


관객들은 비록 이 영화가 지극히 과장된 비현실적인 설정의 블랙코미디라 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내면에 드러나지 않는 깊은 마음속에 본능은 만수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어땠을까. 영화 중간중간에 박찬욱 감독의 웃음 코드가 있지만 따라 웃기에는 슬프고 씁쓸하다.

만수가 첫 번째 제거 대상인 구범모에게 총을 겨눌 때,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관 가득히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고추잠자리의 노래 속에서 만수는 소리친다.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 돈 못 벌면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날라.”


극장 내에 커다랗게 울리는 고추잠자리의 음향 속에 묻혀 들릴 듯 말 듯 한 만수의 외침. 그 외침은 아마 만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만수의 단말마 같은 소리는 음악과 불협화음을 이루면서도 묘하게 이입된다.

가난해진 집안 형편을 알게 된 만수의 아들이 휴대폰을 훔쳐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 거짓말을 가르치고 거짓을 강요하는 아버지 만수, 이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부도덕한 가르침을 주면서 갈 데까지 가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어리석음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고집스럽고 평범했던 미련한 한 남자가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해 가면서 어떡하든 취직을 하고 싶은 극단적인 이기심. 블랙코미디 웃픈 현실을 예술로 풍자한 박감독은 도덕적인 억압을 통해 역설적인 해방감을 보여준다.


만수의 딸은 자폐를 앓고 있다.


“벌레가 들끓어서 나무가 자라지 못해.”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코 그런 말을 반복한다. 벌레가 들끓어서 나무가 자라지 못해. 이 말은 아빠의 영혼이 갉아먹혀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로 붕괴되고 있다는 암시를 아이의 입을 통해서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만수는 가족을 위해 한 일인데, 그 일 때문에 가족이 파괴된다. 그렇다면 그 모든 노력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가장인 만수는 가족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급기야 거대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결국 모든 걸 알게 된 만수의 아내가 건네는 억지 미소, 겉으론 다 이해한다며 우아하게 응원을 보내는 만수의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수의 가족들은 웃고 행복해하며 영화가 끝이 났지만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시체를 파묻고 사과나무를 심은 나무에 벌레가 들끓어 살 수가 없듯이, 이들의 가정은 어느 사이 금이 가고 결국엔 해체되지 않을까. 영화는 열린 결말로 엔딩을 올렸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각자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민, 실직, 해고, AI에 밀려나는 세태를 말해준다. 인간미가 넘치던 초반의 만수는 사라지고, 결국 인간성을 포기한 대가로 불 꺼진 공장에서 기계들과 혼자 일하는 만수. 자신이 했던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공장 안에서, 기계들과 소음 속에서 일하는 만수를 보는 마음은 심란했다. 기계가 일하고 인간의 노동력도 범위가 줄어드는 세상이 도래했다. 결국 인간은 AI의 대체로 잉여자원으로 밀려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벌목 장면에서 나무가 잘리는 신이 나오는데, 그것은 만수가 평소에 말하던 ‘모가지가 댕강’ 잘릴 수도 있는 만수의 처지를 우회적으로 나타낸 설정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 트래딧이 올라가는 엔딩에도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어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였고, 내가 과연 박찬욱 감독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잘 파악했는지 궁금증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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