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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바다 5

by 정윤

경비실로 발걸음을 옮긴 남자가 경비원에게 묻는다.


-1805호 여자 말입니다. 혼자 사는 여자 맞습니까?


경비원은 의혹의 눈빛을 보이며 남자의 위아래를 훑어본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남자는 1805호 창을 올려다보다가 말한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요. 가족들이 있습니까? 상태가 이상한 여자 같아서요.


-그 여자 혼자 사는 여자 맞긴 한데, 왜, 그 여자가 이상해요? 그래도 그렇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경비원의 말에 남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여자의 방을 올려다본다. 남자의 얼굴로 싸늘한 밤바람이 스친다. 담배를 피워 물며 한참 동안 서 있던 남자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어둠이 밀려오자 여자는 닫힌 현관문을 다시 확인한다. 가스레인지를 몇 번씩 점검하고, 창문의 커튼을 친다. 여자의 다리에 힘이 빠진다. 형광물질을 달고 있던 네온테트라가 수면 위로 점프를 한다. 산소여과기의 힘만으로는 숨쉬기가 힘든 모양이다. 여자는 열대어들을 살리고픈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관리했던 열대어들은 어머니의 사망 후에 다 버렸어야 했다. 여자는 열대어들을 키우게 된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돈을 빼내 허름한 전세방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부동산에 나가야 하지만 사람을 만난다는 일이 끔찍하다.

여자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여자가 수족관 앞으로 다가간다. 레드알비뇨구피가 괴로운 듯 숨을 헐떡인다. 살려줘! 다급해진 여자는 수족관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식탁 의자를 끌고 와 수족관 옆에 놓은 후 의자 위에 올라선다. 여자가 수족관 뚜껑을 연다. 따뜻한 물 냄새가 올라온다. 어머니와 살던 집 냄새다.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수족관 속으로 집어넣는다. 수족관 물이 바닥으로 흘러넘친다. 살갗에 닿는 물의 감촉이 서늘하다. 수초와 열대어들이 여자의 다리를 스쳐 지나간다. 여자는 다른 쪽 다리도 수족관 속으로 담근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여자의 팔과 다리, 몸통이 모두 비늘로 덮이기 시작한다. 두 다리는 붙고 발끝에 꼬리지느러미가 생긴다. 수족관이 점점 넓어진다. 아니, 여자가 작아지고 있다. 유리벽이 멀어지고, 수초가 거대한 숲으로 변한다. 여자는 천천히 물속을 헤엄쳐 수초 사이를 빠져나간다. 부드러운 해초가 얼굴을 스친다. 빛이 수면을 통과해 알록달록한 무늬를 그린다. 여자는 무한하게 펼쳐진 푸른 바닷속을 유영한다.


며칠 후, 남자는 가게에서 청소물고기 주문을 받자 갑자기 여자가 떠오른다. 그 창백한 얼굴. 초점 없는 눈빛. 아내가 죽기 전 표정이었다. 불길함을 느낀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만 길게 울린다. 다시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


남자는 불안한 마음에 가게 문을 닫고 미도 아크로빌로 향한다.

경비실 앞에서 남자가 묻는다.


-혹시 1805호 여자, 본 적 있습니까?


경비원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글쎄요. 며칠째 안 보이던데. 택배도 쌓여있는데. 왜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18층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다시 눌렀으나 여전히 조용하다.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계십니까? 수족관에서 왔습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남자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경비원을 설득한다. 경비원이 마스터키를 들고 따라온다. 문이 열린다. 바닥이 젖어 있다. 현관에서부터 안쪽까지 물자국이 이어져있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원이 뒤따른다. 불은 꺼져 있고 수족관의 푸르스름한 불빛만이 방안을 비추고 있다. 침대는 정돈되어 있고, 화장대 위 물건들도 그대로다.

수족관 앞으로 다가간 남자가 멈춰 선다. 수족관 물이 반 이상 줄어 있다.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고여 있다. 의자 하나가 수족관 옆에 쓰러져 있다. 남자가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구피들 사이로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5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다. 무지갯빛 비늘, 투명한 지느러미, 긴 꼬리. 남자가 처음 보는 물고기 종이다. 물고기가 천천히 헤엄치며 수초를 지나 유리벽 쪽으로 온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의 몸에 소름이 돋는다. 몽환적인 저 눈빛.


-이 아가씨 어디 간 거야.


경비원이 중얼거린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유리벽을 지나 수초 숲 사이로 사라진다. 수족관 안에서 기포가 보글거리며 올라온다. 남자는 젖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수족관 유리면에 손을 댄다. 차갑고 단단하다. 수족관 안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열대어와 무지갯빛 비늘의 물고기가 수초 사이를 오가며 유영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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