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택배함을 열 때마다 사람들이 있는지 복도를 먼저 살핀다. 발소리가 들리면 손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이웃 택배함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누가 사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고등학교 때, 여자는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그 시절을 보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여자에게 뭘 물어왔는데 얼굴이 붉어지며 앞이 캄캄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시야가 갑자기 하얗게 변해왔다. 식은땀만 흘리는 여자에게 선생님은 양호실로 데리고 가 휴식을 취하게 했다.
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여자는 항상 외톨이로 지냈다. 이상하게 아이들과 말을 하려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떨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도 여자는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옆 짝마저도 다른 자리로 가 밥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면 말을 하기가 싫어 방문을 걸어 잠갔다.
-신경정신과에 가보자. 선생님이 너 요즘 이상하대.
어머니가 다그치면 여자는 책상 위의 물건들을 집어 던졌다.
여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바뀌곤 한다. 한없이 가라앉았다가도 어떨 땐 기분이 갑자기 상승하곤 한다. 때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없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삼빡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너무 두렵고 자신이 없다. 커튼을 젖혀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겨울이 올 것이다. 다가오는 계절에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여자는 알 수 없다. 여자는 혼자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여자는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게 두렵기만 하다. 불안감이 여자의 가슴밑바닥을 톡톡 쪼아댄다.
부모의 사망 후, 아파트를 정리해 이곳으로 왔다. 보험회사에서 나온 보상금으로 생활을 해왔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는지는 여자도 알 수가 없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나간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심호흡을 해본다.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여자는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네온테트라가 물에 둥둥 떠 있다. 죽은 네온테트라를 조심스럽게 들어낸다. 물에 불은 몸통은 평소보다 배는 커 보인다. 여자는 죽은 네온테트라를 화분의 흙속에 묻는다.
옐로구피의 꼬리도 너덜너덜 해졌다. 레드알비뇨구피가 바닥에서 퉁겨 올라 헤엄을 치자 네온테트라 세 마리가 달려들어 수염과 지느러미를 공격한다. 레드알비뇨구피가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인다. 여자는 난감해진다. 수족관 남자를 또 불러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여자를 짜증 나게 만든다. 불안감이 여자의 전신으로 옥죄어온다.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그날 밤 여자는 꿈을 꾸었다. 자신이 수족관 속으로 들어가서 옐로구피와 함께 헤엄을 치자 수족관이 끝없이 푸른 바다로 변하는 꿈이었다. 여자는 바닷속을 맘껏 유영하며 놀았다. 행복감이 차올랐다.
남자의 휴대폰이 울린다.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이다. 수족관에 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자의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있다.
-물고기가 자꾸 죽어나가요. 구피의 몸이 뜯겨 있는데 물도 탁하고,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마치 수족관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남자의 탓이라도 된다는 듯이 들린다. 남자도 짜증스러워진다. 남자는 전화상으로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어서 일단 가서 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선다. 여자는 세수도 하지 않았는지 푸석한 모습이다. 생기가 없이 파리해진 모습으로 보아 어디 아픈 건 아닌가 하고 남자는 추측한다. 여자의 트레이닝 바지는 무릎이 튀어나와 있고, 헐렁한 티셔츠도 얼룩이 묻어있다. 단정했던 예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남자는 여자에게 무관심한 척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열대어들이 지느러미를 활짝 펴지 못한 채, 몸을 세우고 머리를 흔들면서 헤엄을 친다. 또 다른 녀석들은 산소 여과기 쪽으로 우르르 몰려있다.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물도 탁하다. 남자는 난감해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의 시선을 외면한 채 서있던 여자가 갑자기 손톱을 물어뜯는다. 남자는 손톱을 물어뜯는 여자를 보자 아내가 떠오른다. 말기암이었던 남자의 아내는 시한부를 받고 극도로 불안해 했다. 항상 손톱을 물어뜯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죽기 며칠 전, 뼈만 남은 모습으로 남자의 손을 붙들고 흐느꼈다. 살고 싶어 여보, 나 살려줘. 하면서 피를 토하듯 울었다. 그러고 3일만에 눈을 감았다. 여자의 시선은 초점을 잃은 채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남자는 여자의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균성 감염입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빨리 격리 안 하면, 다 전염되어 전멸합니다. 열탕 소독을 하고 나서 앞으로는 청소물고기를 키우세요.
-청소물고기요? 그런 게 다 있나요?
초점을 잃고 흔들리던 여자의 눈이 반짝 빛을 낸다.
-예, 그 녀석을 키우면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지요. 그 녀석이 청소를 다 해주니까요.
남자는 누구나 다 아는 청소 물고기를 처음 알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는 여자를 황당하게 바라본다. 자신의 이야기가 여자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푸! 내쉰다. 표정 없이 굳어있던 여자가 금세 야릇한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젓는다. 그 미소는 파란 수족관 등에 비쳐 섬뜩하게 보인다.
생각이 바뀌면 연락을 달라고 말하며 남자는 여자의 집을 나온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남자는 수족관 청소를 해준지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수족관 안이 그렇게 변해버리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다른 이물질을 집어넣지 않고서야 수족관 속이 그렇게 변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창백하던 여자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봤을 때, 몽환적인 눈빛으로 느껴졌던 여자의 눈빛을 남자는 비로소 감지해 낸다. 이대로 여자를 방치하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남자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려던 마음을 바꾸고 1층 출구 쪽으로 나온다. 건물 앞에 서서 1층부터 하나, 둘, 층수를 세기 시작한다. 열여덟 번째 층에서 남자의 시선이 머문다. 1805호. 여자의 방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창문에 희미하게 어려 있다. 남자는 불안한 마음에 여자의 방에 다시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올라갈 만한 구실이 없다. 어떻게 한다? 여자의 핏기 없는 얼굴이 또다시 떠오른다. 남자는 여자의 방을 올려다보며 잠시 혼란에 빠진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