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보고 자세히 묘사하기
이곳은 프랑스 남부 아를에 있는 카페이다. 카페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명한 노란색 건물이다. 이른 아침이라 카페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문이 닫힌 카페는 왠지 스산한 분위기이다. 하늘은 희끄무레한 구름들이 몰려 있고 해가 비치지 않는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노란색 건물은 밝고 따뜻한 기운을 풍긴다. 벽면은 노란색이 군데군데 얼룩져 있어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2층에는 청록색 철제 난간이 달린 발코니가 있다. 녹이 슨 듯한 청록색 난간은 우아한 곡선과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도 있어 오래된 철의 질감이 드러난다. 이곳에 밤에 오고 싶었지만, 일정상 부득이하게 이른 아침에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카페를 바라보다가 카페 앞 둥근 원탁 의자에 앉는다.
광장에는 크고 작은 둥근 테이블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손바닥으로 테이블 표면을 쓰다듬자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이 전해진다. 테이블 주변에는 빨간색과 검은색 의자들이 놓여 있다.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는 가벼워 보였고, 검은색 의자는 금속과 플라스틱이 섞인 듯하다. 나는 검은색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앉는다. 반들반들 길이 나있는 검은색 의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다녀간 흔적을 보여준다. 의자는 딱딱하고 차갑다. 나는 푸른빛과 분홍빛이 감도는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스카프의 부드러운 천이 목을 감싸준다. 검은색 바탕에 노란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썼다. 한 손은 빈 탁자 위에 올리고 한 손은 가방을 부여잡고 있다.
카페 위쪽으로 선명한 노란색 차양막이 길게 펼쳐져 있다. 그 차양막 아래로 화려한 꽃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알록달록한 조화들이 울긋불긋 뒤섞여 있다. 가까이서 보니 플라스틱 재질의 꽃잎들은 먼지가 쌓여 칙칙하게 보이지만, 햇살이 비추면 밝게 빛날 것 같다. 차양막 아래에는 대여섯 개의 조명등이 달려 있다. 밤이 되면 이 등들이 불을 밝히고, 카페는 고흐가 그렸던 그 몽환적인 노란빛으로 물들 것이다.
오른쪽에는 푸른 잎사귀를 한가득 달고 있는 나무가 서 있다. 한 가닥의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자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왼쪽에는 검은색 가로등이 서 있다. 빈티지한 디자인의 가로등은 밤이 되면 부드러운 노란 불빛을 내뿜을 것이다. 광장은 아침이라 한적하다. 카페 앞 광장에서 비둘기 몇 마리가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 이른 아침의 아를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하다.
카페 왼쪽으로는 회색 건물이 보이고 중앙에는 노란색 건물이 서있다. 창문에는 하얀 덧문들이 달려 있고, 건물의 벽면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고흐를 찾아 이곳 아를을 찾아온 여행객들이 들어찬 카페 분위기는 어떤 모습일까.
생전 고흐는 '밤의 카페테라스'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실제 그림은 짙푸르고 선명한 밤하늘에 노란 카페가 몽환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이 카페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푸른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 기복을 감성적으로 편지에 썼다.
"특히 밤하늘의 별을 찍어 넣은 순간이 정말 즐거워!"
밤하늘을 표현하는 데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고흐는 행복한 기분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보았던 풍경은 밤의 모습이어서,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아침 분위기와는 달랐을 것이다.
저녁이면 이곳에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 와인 따르는 소리, 이국적인 말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과 크루아상의 버터 냄새, 담배 연기가 뒤섞인 특유의 프랑스 카페 향기가 퍼질 것이다. 그 카페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약간 들뜨고 소란스러운 밤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깡그리 어긋나고 말았다. 여행 일정상 밤이 아닌 이른 아침에 아무도 없는 문 닫힌 카페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밤의 카페테라스 그림 속 풍경과 이질감을 보인다.
카페 건물은 원래 노란색이 아니었는데 고흐 그림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건물 외곽을 노란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나는 빈 테이블에 손을 얹고 카페를 한참 바라본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구름 사이로 가끔 햇살이 비쳤다가 다시 숨어든다. 광장의 돌바닥이 그때마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나는 다시 카페를 올려다본다. 2층 발코니, 3층 창문들, 노란 벽면, 청록색 난간, 알록달록한 꽃들.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리지 못했던 빈센트는 가난 때문에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동생 테오에게 지원을 부탁했고, 동생 테오는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빈센트는 유화 물감을 두껍게 칠해서 색채의 농담으로 표현하는 임파스토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말 그대로 물감을 아주 두꺼운 붓이나 나이프, 때로는 그냥 손가락으로 푹 찍어 반죽처럼 두텁게 덧칠해서, 색은 물론이고 질감까지 드러내는 표현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반고흐의 그림에서 바람의 그림자, 하늘의 무한한 깊이까지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팔레트에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 두 색상을 나란히 찍듯이 칠하기 때문에 색과 질감뿐만 아니라 수많은 회색조의 음영까지 생겨 그림에서 입체감과 생동감이 뿜어져 나온다.
고독했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도움뿐만이 아니라 그의 정신적 고통과 삶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다 갔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마지막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영혼은 지금 어디쯤 떠돌고 있을까. 고흐가 사랑했던 이 노란 카페. 짙고 푸른 밤의 열기, 몽환적인 별빛의 무리, 커피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그림자.
나는 광장을 떠나며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문은 닫혀 있고, 텅 빈 테이블들만 남아 있다.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화가로서 실패했던 고흐의 삶이 오롯이 느껴져 가슴 한 귀퉁이가 잘려 나간 듯 쓰리고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