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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유목민 Jul 02. 2024

그렇게 세월의 강은 흐른다

 결혼한 아들이 첫 손자를 낳았다. 며느리는 순산했고, 아기도 건강하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감개무량하고  뿌듯하게 꽉 차오르는 느낌, 처음 겪어본 그 감정은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묘했다.

 나는 며느리와 아들이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병원 쪽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는데도 선뜻 타지를 못했다. 가슴이 너무 벅차올라서 머뭇거리다가 한참을 걸었다. 나에게는 한없이 어리게만 보이던 아들이 아기를 낳다니.

 “아이고, 아기가 아기를 낳았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엄마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그때 엄마 마음도 이랬겠구나, 싶으면서 아들도 이제 아빠가 되는구나. 아기였던 아들이 앞으로 겪게 될, 돈 벌어야 하는 자의 수모와 굴욕을 아이를 위해 참아야 하겠구나. 아빠라는 자리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구나.  손자를 낳아서 기쁜 마음과, 아들이 짊어지게 될 무게에 대한 짠한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들을 낳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중복 날이었다. 날씨는 몹시 더웠고 후덥지근했다. 입원하자마자 시작된 진통은 밤이 되자 더 심해졌다. 분만대기실로 혼자 옮겨져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로 시간이 더디 흘렀다. 과연 무사히 아기를 출산할 수 있을까. 거뜬히 아기를 낳고 이 분만실을 나갈 수 있을까. 온갖 생각들이 병원의 하얀 벽과 냉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밤 12시를 넘기자,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진통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진통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도저히 참을 수없는 고통은 생애 처음 겪는, 너무 아픈데 뭐라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강도로 압박해 왔다. 언뜻언뜻 엄마, 남편,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 9시를 넘기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에 온몸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급히 분만실로 옮겨갔다. 수술대 위에 올려진 나는 힘주라는 간호사의 말에도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이를 악물고 힘을 줬지만 내 몸은 알 수 없는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 듯 땀을 흘렸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순간, 어렴풋이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낳았나? 내가 아기를 낳았나?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 아기 손목과 발목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띠를 보여주며, 확인하라는 간호사의 하얀 모자가 어렴풋이 보였다가 사라졌던가? 초주검 상태에서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 틈에도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는 기쁨과 환희의 나래가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한참 후에 눈을 떠보니 나는 분만대기실로 옮겨져 있었다. 간호사는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입원실로 갔다. 분만실 앞에서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남편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나는 거의 죽은 시체처럼 침대 위에 눕혀졌다.

 “아이고 울 애기, 이제는 살았다.”

 내 손을 붙잡고 엄마가 눈물을 글썽였다. 울컥 눈물이 솟았다.

 “아이고, 아기가 아기를 낳았네.”

 엄마는 내 손등을 토닥이며 대견해하셨다.

 엄마도 이렇게 힘들게 날 낳아 키웠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죽을힘을 다해 나를 낳았을 엄마에게 미안했다.      

 신생아실에서 아들을 처음 봤을 때, 눈을 꼭 감은 채 그 작은 주먹을 통째로 입에 집어넣고 빨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아이가 눈을 살며시 떴다. 너무나 귀엽고 신비로운 모습, 파르르 전율이 일만큼 경이로웠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됐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은 미숙함과 걱정만 가득했다. 남편은 병원에서 아빠 이름을 쓰라는 출생확인서를 받고 시아버지 이름을 썼다. 아직 실감 못해 얼떨떨한 상태로 처음 엄마 아빠가 된 남편과 나는, 세상에 이렇게 귀하고 예쁜 선물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나, 신기하고 대견해서 아기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랬던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 아들도 이제 아이를 키우며 기뻐할 순간들, 아이가 아파서 가슴 졸이던 순간들을 경험하며 차츰 어른이 되어가겠구나.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 들어가겠구나.     

 병원에서 본 며느리의 모습은 약간 부은 듯했으나 밝고 건강해 보였다. 양수가 미리 터져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사돈댁에서 급히 병원으로 데려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쉽게 엄마 되는 법이 없는 모양이다. 누구나 엄마가 되려면 형용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건가. 왠지 며느리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고, 귀하고,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고생했다며 며느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며느리는 참하고 바른 아이다.

 며느리가 손자를 임신해 있을 때, 아들 생일을 맞았다.

 밖에서 만나기로 한 날, 며느리는 백합꽃을 한 아름 나에게 안겨 줬다.

 “아들 생일인데, 이거 내가 받아도 되는 거냐?”

 “저 임신해서 입덧도 심하고 너무 힘들었거든요. 어머니도 오빠를 힘들게 낳으셨을 생각 하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멋지고 자상한 오빠를 잘 키우고 가르쳐서 저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속 깊은 아이가 있나. 코끝이 찡하게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한때는 아기였을 며늘아기, 이제는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느라 노심초사하겠구나. 이런 엄마라면 지혜롭게 아이를 잘 키울 것만 같아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아이가 엄마가 되고, 또 그 아이가 아빠가 되고, 그렇게 세월의 강이 흐르며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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