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술
각기 다른 곳에 사는 자녀들이 한 곳에서 뭉쳤다. 와인잔을 들고 셋이 페이스톡으로 전화한다. 환한 얼굴울 한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남편에게
“우리도 한잔할까?”
“마 됐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남편은 술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선 거의 마시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신혼 초에 술을 마시고 놀라게 해서 인지, 나에게 같이 술 마시자는 소리는 절대 안 한다. 그 사건엔 이유가 있었다.
남편이 친구를 아주 좋아해서 결혼해서도 친구가 우선이었다. 자꾸 친구들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니 오기가 나서, 빈속에 맥주 세 캔을 억지로 마셨다. 그랬는데 그 정도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남편에게 따지기도 전에 속이 뒤집히고 그대로 토악질을 했다
“못 먹는 술은 왜 마셔서 이러냐?”라면서 도로 내게 큰소리했다. 나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뻗어버렸지만, 그 담부터 남편은 자제를 하는 듯했다. 그 일이 있었던 후로 술자리에서 나에게 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술 못 먹어요. 험한 꼴 봐요. 주지 마세요.”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우리 부부도 술을 즐기지는 않고 아버님 어머님도 술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술이 올라가는 제사 때도 마치고 나면 술은 작은 집으로 보낼 정도였다.
그러니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들이 신기하다. 저 녀석들의 술 유전자가 어디서 왔지? 남편은 술을 조금 하는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술 마시고 싶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들어는 봤는지?
‘시집와서 술상 한 번도 차리지 않은 여자’. 시집 살면서 술상을 차릴 일이 없었다. 아버님께서는 늘 당신에게 고마워하라고 하셨다. “시집살이가 고되니 내가 봐주는 거야.” 하셨는데 실상은 아버님은 술을 한 방울도 못 하신다. 정말 향만 맡아도 술에 취한다. 그리고 시어머님도 당신의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하셨기 때문에 어머님은 절대 술을 드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보름에 귀 밝기 술도 나 혼자 한잔 하는 수준이다. 그럼 나는 주량이 센가?
그날그날 기분에 맞춰 맥주든 뭐든 그냥 분위기는 타는 정도이다. 많이 마시고 내가 힘들어봐서 선을 넘지는 않는다. 또 시댁에 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세 녀석이 술을 즐기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이쯤에서 남편은
“다 외가 쪽을 닮았구먼, 그러고 보니 당신이 술을 못 하는 것이 이상하네.” 한다.
아버지는 자칭 애주가셨다. 조금이라도 안주가 될 만한 반찬이 나오면 바로 “술도 한 잔 줘야지.” 하셨다. 다행히 엄마도 술을 좋아하셔서 두 분은 장단이 잘 맞았다. 밖에선 모르겠지만 집에서는 늘 적당히 드셨다.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한다시며 성인이 되면서 우리에게도 한 잔씩 주시곤 했다. 나는 지금도 술맛을 잘 모르는데 동생들은 만나면 ‘한잔해야지’ 한다.
치매가 온 엄마는 초기에는 반주를 가끔 찾으셨는데 이제는 술을 잊으셨는지 찾지 않으신다. 예전엔 여행 가시면 늘 막걸리를 사 오셨다. 지역마다 특산물을 첨가한 막걸리가 맛이 다양하다고 좋아하셨다. 그렇게 친정집엔 늘 술이 넘쳐났다.
하지만 시집엔 술이라곤 제사 때 쓰는 정종밖에 없었는데, 아들 덕분에 찬장에 술병이 늘어난다. 특히 아들은 칵테일도 배워서 가끔 마시기 아까울 정도로 멋진 맛을 내주며 분위기를 살리고, 딸들은 와인을 즐긴다.
유전자가 내려오긴 한 모양이다. 나를 건너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