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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처럼

독일붓꽃

by 김미희건이나비

“나는 꽃이 좋다.” 이 단순한 말속에 내 일상이, 삶의 방식이, 마음의 중심이 담겨있다.

텃밭에 가면 아버님께서 심으셨던 채소와 과실수들이 있지만, 나는 그 사이사이에 꽃을 심는다. 이른 봄,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노란 배추꽃도 덩달아 올라오면 마치 꽃들의 파티가 시작된다. 이어 살구나무가 연분홍 꽃을 피우면, 달맞이꽃이 나무 아래서 마주 보며 합창을 하듯 어우러진다. 사과꽃과 찔레꽃도 지지 않으려 끼어든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은 없는 듯하다.


어디서든 없는 식물을 보면 씨앗을 얻어오거나, 작게 자란 모종을 데려오기도 한다. 한 번은 안동의 지인 집에서 처음 본 독일붓꽃에 반해, 한 포기만 달라 졸라서 데려왔다. 작은 포기를 심고 무려 3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어여쁜 연보랏빛 얼굴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보라색과 노란색 붓꽃과는 결이 달랐다. 꽃송이도 크고, 피어나는 모습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열리기에 매일 들여다보며 가슴 졸였다.


집에 돌아올 때 아쉬운 마음에 꽃 한 송이를 꺾어 화병에 꽂았다. 신기하게도 봉오리까지 차례차례 꽃을 피워냈다. 나는 한때 꽃가게를 잠시 했었기에, 꽃의 성질을 안다. 어떤 꽃은 오래가지 못하고, 어떤 꽃은 끈적한 가루를 흘리며 지저분하게 시든다. 그런데 아이리스(붓꽃)는 달랐다. 화병 주변도 깔끔했고, 꽃이 진 후에는 그 큰 꽃잎을 조용히 돌돌 감아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게 줄어들더니, 톡 하고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다른 꽃들도 관찰하게 되었다. 목련은 시드는 모습이 처연하고, 5월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도 지는 모습은 그리 곱지 않다. 그러던 중 무궁화꽃을 발견했다. 무궁화는 하루를 열심히 피고는, 아이리스만큼 작게 줄이진 않지만, 흩날리지 않게 조용히 꽃잎을 말아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무궁화는 오래 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일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이리스를 보며 문득 노후를 떠올리게 되었다. 조용히 피어나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 그런 마무리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주었다. 요즘은 식물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렵게 피어난 나팔꽃 한 송이는, 겨우 몇 장의 잎만 내고도 자랄 수 없음을 알았는지 작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기고는 사라져 갔다. 말 못 하는 식물도 그렇게 살아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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