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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안나 Jul 11. 2022

일이 주는 성취감이라니, 그게 뭔데요?

대학 시절 어느 사회 문제 심리학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각 단원은 청소년 문제, 여성 문제 등의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이 문제의 현황을 조사하고 해결책을 찾는 조별 활동으로 구성된 수업이었다.

그 중 한 단원이 노령 인구층의 일자리 문제였다. 그날도 여느 수업 때처럼 문제의 현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인층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이는 노인층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악화 시켜 고립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뭐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 순간 나는 혼자 다른 공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다.


아니, 돈이 충분히 있으면 일을 왜 해야 되는데? 일 하는 게 무슨 가치가 있는데? 사회적 연결고리? 그건 일이 아니라 취미생활이라도 얻을 수 있는 건데?


아무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나는 손을 들었다.

‘저기...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그냥 단순한 제 의문인데, 돈이 있는데 늙어서까지 일을 하고싶을까요?’

순간 정적.


자상한 같은 조의 팀원이 ‘저희 할아버지를 보니까 은퇴하시고 나서도 소일거리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라고 방긋 웃으며 나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이 거들었다.

‘일은 단순히 생계 유지 수단이 아니니까요’

그으래요?


그 후로 십몇 년이 지나 직장인 생활도 십 몇 년 정도 해온 나는 오늘도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빨면서 ‘일하기 더럽게 싫네’ 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조기 은퇴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하고 있다. 현재의 저축률과 현재 생활 수준(오늘처럼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것도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생활 수준)을 기반으로 한 계산대로라면 나는 정년까지 일해야 죽을 때 은행 계좌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돈만 있으면 사회적 연결고리도 소일거리도 필요 없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일과 가정 양립이 힘이 부친다며, 경제적으로는 외벌이로 어떻게 될 것 같으니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여성이 남긴 인터넷상의 글에 주로 달리는 댓글은 ‘일이 없어지면 무기력해져요. 일이 주는 성취감이라는거 무시 못 해요’라는 것이다.

아니 그 성취감이 도대체 뭔데요? 다른 회사에는 그런 게 있는 건가요? 이 회사에만 없는 건가요?


언젠가 회사에서 단순 사무직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50대 여자분이 나에게 그랬다.

‘사람이, 나이 먹어서도 일을 해야 돼. 성취감이라는 게 있는데. 일 안하면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사람이 이상해져’

키보드 시프트 키 사용 방법을 몰라서 겹자음과 겹모음을 입력하지 못하던 그분이 말하는 성취감이라는게 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생애 첫 면접 날이 기억난다. 처음으로 들어간 그럴듯한 사무실에서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저마다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거기에는 사내 시스템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이 회사에 들어오면 저런 거 쓰는 방법도 배워야겠지? 그런데 그게 내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직 붙지도 않은 회사에 대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되었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내 시스템도 그렇고 업계 정보도 그렇고(업계에 따라 정도는 약간 달랐지만) 늘 ‘이게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라는 의문만 가득한 회사생활이었다.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하기는 하는데 사람 속이야 다른 사람은 모르는 거고 다른 사람은 나에 대해서 모르고 나도 다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다. 그런데 회사원 생활 십 몇년 만에 나는 회사원으로서의 나에 대해서는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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