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 선함, 아름다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범주와 영역에 속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문제들은 철학적 문제에 속하지 않는다고 귀결시키고자 했으나 그 누구보다도 삶과 윤리, 종교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인물이었다.
칸트는 인간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어떻게 선함을 추구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였다. 압도적 자연의 대지진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고등학생 시절 치기 어린 마음에 내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 읽었던 논리학 책. 더 똑똑하고, 더 많이 알고, 더 수학적이고 싶어 을분이 터졌던 감정이 생생하다.
무더웠던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던 자연과학 책. 자연과학이 어떻게 수학으로 기술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레일리 산란과 원자의 아름다움만 느꼈을 뿐이었다.
2017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16번 문항의 지문. 이 지문을 읽을 때 정교해진 행복함과 무지했던 안타까움이 교차되어 덮쳤었다.
해야만 했던 수험법학 공부. 현실 세계에의 수많은 분쟁에는 논리, 합리와는 무관한 과정이 더욱 많았다.
MIT의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코드들과 그를 구현하는 기술 습득. 무어의 법칙이 하루하루 크게 실감나고 있다 (사진: MIT).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을 선함과 탁월함의 근간으로 보았다. 오늘날 원자화된 행복이 더 이상 윤리와 양립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듯한 경우를 자주 목도하게 된다.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의 근거는 변호사에게 요청되는 강한 공공성과 윤리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개인으로서와 직능인으로서의 나의 윤리가 충돌할 때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새벽 4시 아무 차량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나는 절대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내가 윤리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빨간불이기 때문이어서다. 이런 행동 자체는 윤리적인가?
현대 윤리학자 센델의 정의에 관련된 책과 강연. 그의 윤리관의 대상이 한 개체로서의 인간인지 개별 행위인지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에서 디오티마의 입을 빌려 불멸의 사랑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가고 있는데,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 이야기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칸트는 이러한 사랑 담론의 계보에 더하여 사랑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 인간의 미추 판단이라는 능력을 통해 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보였다.
기숙사 1층 델리코 카페에서 격양에 찬 채로 단숨에 다 읽었던 김동규의 책. 멜랑콜리를 통해 서양 예술작품과 문화를 조망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과거와 현재가 뒤범벅된 서양 예술문화의 모습 속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아름답고도 혐오스럽게 그려낸 영화였다. 그리고 한 가수는 내가 떠올렸던 그것과 비슷하고도 다른 시상을 파리 인 더 레인이라는 노래로 현명하게 풀어냈다.
가장 좋아하는 카페들. 낯선 곳이라도 카페를 방문해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공상에 빠지는 시간을 사랑한다. 가끔 그 기억의 장면들이 한 점의 흑백사진 속 피사체처럼 불현듯 머릿속에 머무를 때가 있다. 그렇게 찾아오는 장면을 찬찬히 곱씹으며, 그때의 기억과 감정에 대해 음미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 마음과 감수성을 더 섬세하게 사용하고자 할 때 찾았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과 예술마을. 현대 그림과 조각품, 미디어 아트들을 감상하며 고요한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었다. 아련함이 묻어있는 장소들.
처음으로 음악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정신적 공명과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음악 앨범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이런 음악을 우연히 감상하고 파고들 수 있었던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음악은 항상 그 음악을 들었던 그 시간과 장소의 내가 보고 느꼈던 그대로, 기억 속 그곳으로 다시 데려다준다.
가끔 공개된 무대 위에 오를때면, 음률을 연주하고 곡조를 부르는 내가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까맣게 잊게 된다.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가는 운동하는 공간. 무거운 무게를 들고 밀고 당기는 활동을 하며 몸이 흥분되면 자연히 정신과 사유의 방향이 새로워진다.
매번 만날 때마다 고양이는 나를 동일한 나로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