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이여
지난 10월 29일은 토요일이었다. 일교차는 크지만 낮에는 더울 정도로 따뜻했고, 짧디 짧은 가을 날씨의 절정을 이룬듯한 날이었다. 이날 나와 절친 토성맨은 여의도 밤도깨비 시장에 갔다. 해가 지니 날이 제법 쌀쌀했음에도 한강 앞으로 펼쳐진 야시장에는 젊은 청춘들로 가득찼다.
원래 우리 계획은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차 추워지는 날씨,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많은 사람 때문에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결국 우리는 한 바퀴를 슥 둘러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30대인 토성맨과 내게 '사람 많은 곳'은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선호하지만, 나도 20대 초중반 때는 시끄러운 곳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20대 초반, 친구 한 놈이랑 클럽에 한창 빠졌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젊은 열기로 서울 곳곳의 클럽을 돌아다녔다. 우리가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며 '무료 입장 팔찌'를 받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새벽같이 춤추고, 지하철 첫차를 타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체력이 대단했다.
이태원 클럽에 간 적도 있다. 클럽이 본격적으로 막을 여는 시간은 밤 10시다. 밤 10시부터 12시가 전국 어느 클럽이고 가장 피크타임이다. 예쁘고 잘생긴 청춘들은 다 이곳에 모이는 듯 싶었다. 클럽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나와 내 친구처럼 그저 술 한 잔 먹고 신나서 춤추러 온 사람들도 정말 많다.
클럽 안은 정말 시끄럽긴 하다. 근데 그 시끄럽고 번잡한 게 매력이다. 지금이야 이해할 수 없는데 그땐, 그 나이 땐 그랬다 정말. 그저 '젊음'이라는 입장권을 들고 청춘의 열기 속에 몸을 맡기는 거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저절로 발이 끊긴다. 취업 준비에 치이고 사회생활에 치이면서 체력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에 애인을 만나 진지한 사랑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밖보다 안을, 소란보단 고요가 좋은 30대의 나는 일요일 아침, 이태원 참사 소식을 처음 접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할로윈은 아니었지만, 약 10년,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사고가 난 골목은 이태원의 메인 거리로 들어가는 통로다.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프로스트>라는 펍이 있는데 이곳은 이태원 안에서도 이른바 '헌팅의 메카'로 불린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곳은 꼭 한 번씩 들어 가보는 것 같다. (아마 지금도 그럴 거다)
아무튼 그 프로스트가 워낙 메인거리 도입부에 위치하기도 했고, 핫플레이스기 때문에 길목은 언제나 사람들로 꽉 차 있다. 프로스트는 입구부터 오가는 사람들로 매우 복잡하다. 내부에 들어가도 서 있기 힘들 정도다. 약 10년 전 금요일 밤이 그랬으니, 아마 할로윈 같은 특별한 날에는 더욱이 엄청났을 거다.
결국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그 골목에서 사고가 터졌다. 끔찍한 비극이다. 사고가 발생한 10시 ~ 10시 30분대는 길에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대 중 하나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가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밤샘 없이 놀러 온 이들은 보통 이때쯤 발길을 돌린다. 주말에는 지하철이 빨리 끊겨서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150여 명의 청춘이 허망하게 숨졌다. 집에 돌아가는 길을 걷다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들이 세월호의 트라우마를 안은 세대, 대학 가니 코로나로 배낭여행은커녕 캠퍼스의 로망조차 제대로 한 번 누려보지도 못한 세대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웠다.
모두가 "우리 세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고 즐길 수 있지 않았는가. 가장 젊고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에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는 국내에서 변질된 할로윈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이 또한 세대 차이로 인한 편협함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라디오를 들으니 요즘 20대들에게는 할로윈파티가 크리스마스급의 이벤트라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지난 토요일은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예쁘고 멋진 얼굴을 가리지 않곧 맘껏 놀 수 있는 빅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 끔찍한 사고를 바라보면서, 사상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기 때문에 언제고 자기 몸은 자기 자신이 지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다. 생(生)에 간절하면서 죽음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인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이 '놀러갔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건 모순이다. 토요일 밤, 집을 나서는 누구라도 본인의 비극을 상상하면서 약속 장소로 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다시 10년 전, 이태원의 그 좁은 골목을 내려갔던 20대 때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운 좋게 30대가 됐지만 그들의 주말은 20대에서 멈춰버렸다. 꽃 같은 청춘 150여 명이 꽃잎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시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진심을 담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