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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Aug 01. 2023

3인분을 택한 4인 가족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동네에 가성비 샤브샤브 칼국수집이 하나 있다. 매콤한 버섯 칼국수를 하나 시키면 미나리와 버섯이 듬뿍 담긴 냄비가 나온다. 여기에 남은 국물에 삶아 먹는 칼국수 면, 계란이 하나 터져있는 볶음밥까지 세트다. 이렇게 쓰리콤보가 겨우 9천 원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말도 안 되는 갓성비 음식이다.


보통은 버섯칼국수에 고기를 추가한다. 그래도 샤브샤브 칼국수인데 고기가 빠질 순 없다. 실제로 버섯칼국수만 먹는다고 하면 양이 차지를 않는다. 사실상 고기추가는 디폴트값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주말이었다. 뜨겁고 빨간 국물이 무조건 당기는 날이다. 애인과 함께 샤브샤브 칼국수 집으로 갔다. 대식가인 우리 둘은 칼국수2에, 고기1, 야채추가1을 주문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옆테이블에 4인 가족이 앉았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매 둘과 부부였다. 그들은 넷이 와서 칼국수만 3인분을 주문했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문제는 우리가 고기를 추가로 시키면서다. 먹던 중 직원분께 고기 1인분 추가를 주문했다. 그때 맞은편에 있던 가족 테이블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응?


이상했다. 짧고 강렬했는데 어딘지 촉촉한 눈이었다. 알 수 없는 가장의 눈빛이 뭔가 짠했다.

그 눈빛이 묘해서 가족 테이블에 자연히 귀가 쏠렸다.


"여기는 3인분만 시켜도 양이 많으니까... 고기는 다음에 먹자"


어머니의 왈이었다.

아이들은 우리 테이블을 힐끗힐끗 보는 듯하더니, 고개 숙여 묵묵히 칼국수를 빨아들인다.


정확히 어떤 사연인지까지는 모른다. 그들이 앞서 무언가를 배불리 먹고 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과 그들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3인분 주문이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3인분은 '절약을 위한 선택'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가족이 주말에 소박한 외식을 나온 것이었다.


버섯칼국수.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가성비 밥 한 끼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평범함'을 목표로 참고, 절약해야 하는 외식 메뉴였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웃도는, 명실상부 선진국이다. 하지만 선진국 이면에는 극심한 양극화가 존재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잘살고, 어려운 사람들은 더욱 궁핍해지고 있다. 불가항력의 재해 앞에, 빈곤가구의 피해는 극심하다. 오죽하면 '재난 불평등'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우리는 대체로 아래보다는 위를 바라보며 산다. 개인주의, 집단주의도 아닌 '관계주의' 속성을 가진 한국인들은 특히 타인과 비교하는 게 일상이다. 자신의 위치를 비교선상에 두고 한탄 또는 우울감에 빠진다. SNS의 등장은 이를 더 가속화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뒤로 가려진, SNS 피드 따위에는 올라오지 않는 삶도 무수히 많다. 우리가 보려 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는 동안 그 빈곤의 농도는 소리 없이 짙어지고 있다. 그렇게 극단적 부와 극단적 가난으로 쏠리고 중간은 얇아지는 중이다.


위를 바라보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여러 모양의 삶을 광범위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현재'에 조금 더 충실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아마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조금 더 나은 환경이 되었을 때, 타인에게 베풀 줄 아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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