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곧 보겠구나' 했었다. 곧이어 들려온 한국 영화 최초 아카데미 수상 소식. 더욱이 주요 부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 4관왕 수상 소식까지! 영화 기생충은 내가 곧 곧 곧 거릴동안 이미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영화가 되어 있었다.
시작은 긴장하면서 봤다. 모눈종이처럼 모든 내용을 세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불편한 내용은 아닐까 불안감도 더해졌다. 그런데 보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웃기면 웃고 놀래키면 놀라고 어렵게 보아야 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살인의 추억은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하는 명대사 있다면, 기생충은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하는 명대사 있다. 또한 박두만(송강호)이 수사반장 테마곡을 따라 부르는 '빠라 바라 밤 빠라 바라 밤!' 하는명장면이 있다면, 기생충에는[기정] 이 노래로 가짜 이력을 외우던 '제시카 징글'이라 회자되는 명장면이 있다. 괴물가 비교하면 또 어떤가. 괴물은 국가적 재난 사건에 '정부' 보다는 '똘똘 뭉친 가족' 이 등장한다면, 기생충은 한국의 시대적 사회상을 보여주는 '빈익부, 부익부 가족' 이 등장한다. 그것은 폭우로 인해 화장실 변기에서 똥물이 역류해 솟구치는. 그런 구조의 반지하 집 밖에 살 수 없는 빈익부 가족과 소고기 채끝을 넣어 짜파꾸리를 해 먹는 부익부 가족이다.
영국 BBC에서 한국의 수능에 대해서 '수능, 한국사회가 고요함으로 뒤덮이는 날' 제목의 기사로 '한국의 수능은 대학 진학 여부를 결정할 뿐 아니라 취업, 소득, 거주지 심지어 미래의 관계까지도 영향을 준다. 이러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높은 청년 실업률을 꼽았다.'라고 한다. 정확한 시선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아무리 없어도 시켜야 한다'는 '직업이 인생을 바꾼다'는 자녀 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우리 사회는 '인 서울 상위권 SKY 대학에 합격' 만 한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진다. 그래서 기생충의 [기우] 도 없는 살림에 입대 전 2번, 제대 후 2번, 총 4번의 수능을 준비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기우] 가 위조한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들고 "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 뭐 서류만 좀 미리 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래 뭐. 인정 어 인정' 했다. 내가 사문서 위조죄에 너무 둔감한 것인가? 사진처럼 이웃집 와이파이를 몰래 끌어다 쓰는 건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과 와이파이. 거기다 플러스로 공공장소 무료 와이파이. 그런 디지털 문화 혜택을 송두리째 받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기우] 와 [기정] 에게 데이터? 절도죄를 묻기에 야박한 느낌이 드는 것도 내가 너무 둔감해서 그런가 보다.
이제 지하실 남자를 말해야 하는 순간이다. 지하실 남자가 나타나는 순간 코믹에서 스릴러로 확 바꾸는 듯한 장르의 변화. '이게 도대체 뭐야' 내 반응은 나빴다는 게 아니다. 봉준호 감독님이 워낙 웃겼다 진지했다 왔다 갔다 잘하시지만, 부잣집 지하실에 살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걸. 진심 미리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곧 '인 서울 상위권 SKY 대학에 합격 '하여 성공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기우] 와 반지하를 탈출하기 위해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 하던 [기택] 과 '부자인데 착해' 그랬던 기택의 가족들은 박사장과 그 사모님이 반지하 냄새를 언급했을 때 자신들과 그들 사이에 엄청난 벽이 존재함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냄새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몇이 되려나. 무튼 '냄새'를 언급하는 순간! 영화는 또다시 장르가 바뀌 듯 큰 흐름이 바뀌었다. 박사장은 기절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쇠꼬챙이에 찔린 지하실 남자의 고약하고 지독한 냄새를 겨우 참아 넘긴다. 그리고 코를 막고 차 열쇠를 집어 든다. 그런 박사장을 [기택] 은 칼로 찌른다. 어떤 외국인은 유튜브에 '기생충이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죽이는 내용' 이리고 간단히 설명하던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내용처럼 어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붕괴는 어떤 순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걸 극단적인 스토리로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선을 먼저 넘긴 것은 [기택] 의 가족인지도 모르겠다. 왜 굳이 캠핑으로 집을 비운 박사장의 집에서 파티를 해야 했나. 그러지 않았다면. 폭우로 인해 일찍 돌아온 박사장네 부부가 거실 소파에서 섹스를 나누는 적나라한 소리를 숨어서 들으며 거실 테이플 밑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죽이기는 왜 죽이냐' 했던 박사장은 그렇다면 [기택] 에게 선을 넘은 것인가. 물론 지하실 남자의 고약한 냄새가 너무도 지독 했겠지만은. 인간의 후각이 좋은 냄새만 가려서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 기절한 순간에도 '냄새' 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본심 같은 얼굴을 보인 것이 문제였던 것인가.
역시 해피한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울타리 치고 자신의 삶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못 되는 것 같다. '나는 선을 넘기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타인은 선을 넘겼다 생각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의 삶도 알아가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기는 어렵고. 관심 없는 문제에 관련된 작은 글 하나를 읽어보는 아주 작은 노력 정도는 기울여야겠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애가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 기생충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 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 기생충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상 소식에 등떠밀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서라도 보기 잘 한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