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고독

by 연하

외계인의 고독

그는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었고 나는 요즘 소설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빌려주었다. 그는 그 소설을 읽고 문장이 좋다, 그런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렇게 행동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헤어질 때 그 사람은 나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전개가 느린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그는 나를 해석하기를 포기했고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다. 그 후로 다시 만난 적은 없다.


매년 가을, 날이 선선할 때쯤 찾게 되는 소설이 있다. 작년 가을, 갑자기 그 소설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읽은 것이었으나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듯 느껴지는 문장도 있었다. 오늘 내 방에 있는 그 소설이 생각나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표지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의 책을 ‘내 심신안정제’라고 말하곤 했다. 내 방에는 그의 소설이 한 두 권씩 쌓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 이미 내용은 알고 있으니 아무 페이지나 펴든다. 스토리가 아니라 문장에 집중해 읽는다. 그중 하나가 멈춰 서게 한다. 그곳부터 따라간다. 왜 이 책을 좋아하는지, 이 작가를 좋아하는지, 왜 비행기를 타고 그가 있는 곳까지 가야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불안하게 헤매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한 곳으로 안착시키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작가로서의 목표가 그것이라면 그는 성공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



"최근에 어디 가셨어요?”

"딱히 간 곳은 없는데..."

"아니면 혹시 기름진 거나 매운 거 드셨어요?"

"기름진 걸 먹긴 했어요. 혹시 진드기나 빈대 같은 것일 수도 있나요?"

“확실한 건 혈액검사를 해봐야 하는데 일단 육안으로는 벌레 쪽은 아니고 음식 알레르기 쪽이에요. 보통 일주일 정도면 나으니 범위가 커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병원에 가기 전, 혹시 진드기나 빈대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까는 이불 덮는 이불, 베갯잇을 다 빨았다. 청소도 다시 했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전조증상을 잘 안다. 편안한 복장으로 동네 카페를 오고 가던 나는 기분 전환 겸 9cm 힐을 신고 여름이 지나가는 것 같아 가을 옷과 바꾸어 넣은 치마를 다시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갔는데 발이 조금 아프기 시작하더니 왼발에 물집이 잡혔다. 그건 빨리 해결되었다고 해도, 그다음 날부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간지러워져 어젯밤, 동네 피부과를 검색했다. 추석 연휴인데도 다행히 한 곳의 병원이 문을 열었다.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5일 분의 약을 받아왔는데, 약을 한 번 바르고 약 한 번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몸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이니 밀가루, 단 것, 가공식품 같은 것 당분간 다 피하세요” 이번 기회로 내 식습관을 점검하게 되었다. 아무거나 먹으면 되는 몸이 아니구나. 내 몸을 더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인인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이다. 음악을 들으며 기다릴 수도 있지만 대개는 고요한 침묵에서 내 깊은 곳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길어 올릴 수 있다. 내가 불안해질 때는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그럴 여유가 없을 때, 그것을 표현할 수단이 없어졌을 때다.


이번 연휴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원래 나란 인간은 계획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계획이 있었고 그걸 해야만 했다. 비행기를 끊을 때도 왕복티켓보다는 편도 티켓을 끊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루를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는 기쁨, 그게 좋았다. 너무 일찍 깼다 싶어도 억지로 자기보다는 일어나 있다가 피곤하면 다시 자면 되니까. 오늘은 어디 나갈까, 고민할 수 있고, 나가기 싫으면 집에 있을 수도 있다. 책을 한 두 장 읽어볼까 하다가 읽기 싫어지면 다시 덮을 수도 있다. 잠이 쏟아지면 낮잠을 자다가,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 내일을 잊고 뭐든 할 수 있다. 내일은 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니까. 실험해보고 싶었다. 아무런 강요가 없는 일주일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사는 지를. 나는 나만의 규칙들을 만들어갔다. 그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


“방금 또 넌 페르소나가 바뀌었어.”

“나는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는데.”

오늘의 나는 얼마나 많은 문장을 버려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생각한다.

가끔 당신이라는 사람이 느낄 고독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이해되지 않을 당신만이 가진 생각. 그 고독은 나를 끌어당겼고, 그걸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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