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less me.

관능에 관한 고찰

by 연하

그는 그의 나이를 고려하였을 때 이번 생에서 자신은 더 이상 설레는 감정을 느낄 일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 설레는 감정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누구든 예쁜 여자나 잘생긴 남자를 보면 설레는데 자신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도 이제 고려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그의 영혼과 육체가 요절했음과 미에 대한 얕은 성찰을 보여주는 반증이자 현재 그의 앞에 실존하고 있는 나에 대한 모욕이었다.

관능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의 낭비이다.

내가 그에게 허락한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서 관능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내 눈앞에 있는 자의 성별이 어떠하든 내가 관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이 언어라는 유형의 형태로 나에게 전달된 순간,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관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나에게 관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봤자 젊음을 낭비할 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생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미건조함을 견뎌내는 행위일 뿐, 젊음의 시간을 흘려보내 낭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

삶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 된 부부들은 서로에게 느꼈던 끌림을 기억하며 서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낭만적 희망을 잊은 채 사는 사람에게는 내 영혼의 어느 부분에서도 울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어 나는 자연스레 내 눈앞에 서 있는 그 위에 투명종이에 그려진 전 애인을 겹쳐본다. 역시나 그는 나에 대한 찬양이 부족하다.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인 듯 바라보는 것, 그게 나와 전 애인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때가 비로소 서로가 서로의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탄생의 순간이며 유일하게 창조주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삶에서 한 순간이라도 누군가를 살려 보았는가, 태어나게 해 보았는가, 나에겐 그런 것이 중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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