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은 파도

발리 여행기

by 연하
발리 서핑 해변 사진.jpeg


삶은 바다, 나는 파도를 타는 서퍼다.
파도는 발끝을 간질이고, 발목을 감싸다가 순식간에 허리까지 찬다. 바다는 고요해 보이지만 가끔 치는 큰 파도는 우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큰 파도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인생에 필수다. 마치 큰 파도 위에서 서핑하기 위해 발리의 꾸따 해변을 찾는 서핑족처럼! 내가 느낄 수 있는 큰 파도란? 뭐니 뭐니해도 당연히 사랑이다!


We're having too much fun

Too much fun tonight

And a lust for life

Keeps us alive


[오늘 밤이 행복하고 즐거워. 계속 살고 싶게 해.]


♪ lana del rey-lust for life



발리로 출발하기 전 공항버스에서 5년 간 물에 젖은 신발처럼 무겁게 내 마음 한편을 자리 잡고 있었던 그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매년 그의 생일마다 연락하지 않으리. 남은 20대를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주고받는 충만한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는 야무진 심술을 부려보기로 했다.


이 세상에 날 위해 존재하는 사랑은 없는 거야? 가끔 만나 마음을 나누는 가족과 친구들은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졸업식 날 학교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하다는 이유로 단상 위에서 상을 받았다. 그러나 입시로 인한 경쟁적인 분위기 속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 하나 없이 항상 외로웠다. 대학생 때도 큐피트의 화살은 항상 엇나가고 엉켰다. 혼자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독서실 안에서 2년 동안 버텨내서 이루어낸 취업은 경제적 안정을 주었지만 심해 속에서 혼자 소금물만 들이키다 보니 목이 말랐다. 일로 얽히는 직장 사람들과 잔잔한 파도처럼 왔다 가는 사람들 틈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허함과 지루함에 시달렸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리비도 결핍상태.


발리의 모래사장에 눅눅하게 젖은 오랜 사랑을 묻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오기로 했다!

그렇게 떠난 발리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 소식이 있었지만, 여행기간 동안 비는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발리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첫날, 일주일 내내 비가 왔었다는데 내가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그쳤다. 내 삶도 이제 깨끗하게 소독되는구나! 태양 빛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보송보송 말려주어 반짝반짝 빛나겠구나. 삶에서 예정된 걱정과 불안 중 실제로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지루한 장마도 끝이 있다는 사실이 발리의 햇살처럼 마음속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발리를 다녀온 지 이틀째. 아주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여름밤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집 앞 호수 둘레길을 50분 동안 천천히 뛰고 왔다.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하는 울분의 운동이 아닌 희망의 운동! 이렇게 운동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아이폰 배경 화면에 있는 발리에서 만난 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 덕분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8월의 첫날, 친구 한 명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났다. 사누르, 우붓, 짱구 세 지역을 여행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도시의 획일적인 회색빛 속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드디어 마지막 여행 지역 짱구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푼 후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미리 사두었던 배스킨라빈스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을 연상시키는 노란색과 분홍색이 섞인 파스텔톤 비키니를 입고 발리에서 가장 핫한 비치클럽을 갔다. 계단 아래 바다, 위에는 클럽. 해가 지기 전 바다로 나가 포즈를 취하며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또래로 보이는 남자 무리 다섯 명 중 한 명이 와서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저희도 찍어줄 수 있으세요?”

“어? 한국인이세요?”

“ 와~ 모델이 이쁘다~~~”


그들의 천연덕스러운 말 덕분에 더 과감하게 포즈를 취하며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해질 무렵 해변과 연결된 계단을 통해 비치클럽 내부로 들어왔다. 무대 위에서 피부가 까만 여자가 검정 오프숄더 가죽 원피스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고, 아래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방방 뛰고 소리를 지르며 놀고 있었다. 그곳이 비치클럽 안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운 듯했다. 친구가 말했다.


“저 사람들 우리 바다에서 봤던 사람들 아니야?”


바로 옆에 사진을 찍어줬던 한국인 애들이 있었고, 곧 서로를 알아봤다. 그중 한 남자애가 바로 옆에서 춤을 추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 더워요? 존나 더워요!!!”

“존나 더워!!!!”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다.


춤을 추는 와중에 외국 언니 둘이서 키스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남자(나중에 또 마주쳤을 때 물어봐서 알게 됐다)까지 합세해서 한국인 친구들과 놀았다. 그는 등을 뒤로 구부리며 림보하는 것처럼 춤을 추다가 넘어질 때쯤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잡아주었다. 나에게도 권유하는 눈짓을 하길래 춤을 추며 뒤로 등을 구부렸고 넘어질 때쯤 사람들이 환호하며 잡아줬다. 이 분위기를 담기 위해 셀프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아까 봤던(것으로 추정되는) 외국 언니가 입술에 뽀뽀를 하려고 했다. 다행히 입술은 사수했다. 그리고 오른쪽 앞에 있는 한 남자를 봤다.


귀공자처럼 생긴 서양인. 키가 크고 하얗고 다부진 몸매. 아름다웠다.


‘이 정도로 잘생긴 남자는 살면서 본 적이 없는데.’

쿵쿵 울리며 몸을 누르는 음악과 함께, 심장이 북처럼 크게 뛰며 흔들렸다.


“저기 오른쪽 앞에 완전 잘생겼다.” 친구에게 속보로 알렸다.

“헐 그렇네”


방금까지 신나게 함께 놀던 사람들과 했던 것처럼 그에게 춤으로 접선을 시도했다. 그는 수줍은 듯 몸을 둠칫둠칫 움직였고 잠시 후 왼쪽으로 빠졌다. 민망하기도 하고, 몸을 식히고 싶기도 해서 잠시 그곳을 빠져나와 바로 옆에 있는 풀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바다로 나갈 때 찍혔던 손도장을 본 안전요원이 모래가 묻었으니 신발을 보관함에 두고 오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옷에도 모래가 조금 묻어 있어서 샤워장에서 씻고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계속 그 잘생긴 외국 남자애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나 아까 그 외국인 인스타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한시가 급한데 샤워실 문은 단 두 칸. 샤워실에 들어간 인도 여자애는 샴푸, 린스, 바디워시를 다 하는 건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 바로 뒤에 선 키가 큰 스페인 언니가 기다리다 지쳐 문을 두드렸다.


“우리 이러는 동안 가면 어떡해?”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풀장은 나중에 다시 들어가기로 하고 폰만 챙겨서 나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친구는 샤워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인도 여자애가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체감상 1분 내로 모래만 씻고 나와서 그가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여기 한 바퀴 돌면서 찾아보자.”


바다 근처 선베드를 가봤다.

없다.

레스토랑을 둘러봤다.

없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순간 친구가 말했다.

“쟤네 아니야?”

한국인 남자애들을 만났다.

부산에서 왔고 21살이라고 했다. 나도 같은 경상도, 대구에서 왔다고 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26살이라고 했다.

“가시나는 다 친구지 뭐”

“머스마는 다 친구지 뭐”


그때 친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부산 남자애들 선베드 바로 옆에 그 잘생긴 외국인 남자애가 있었다. 부산 애랑 외국인 애가 함께 말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어, 둘은 어떻게 알아요?”

“저희는 처음 왔을 때부터 친해졌어요.”


아까부터 계속 앞에 왔다갔다, 말을 걸어말아 고민하며 주변을 맴도는 모습을 그들에게 들켜버린 듯했다. 나 꽤나 능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봐.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가자.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지.


“Hello”

그 남자애는 21살이고, 호주 멜버른에 살며,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older brother(형)이라고 했다.

“you are younger brother? (그러면 네가 동생이야?)” 나는 들떠 신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handsome(잘생겼어요.)”만 반복했다. 패를 보여주다 못해 엎어버린 기분이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그의 older brother이 나에게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예뻐요”라고 했다. 한국어가 이렇게 귀여운 언어였다니. 스몰토크도 생략하고 21살 호주 남자애에게 곧바로 인스타 아이디를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나의 간절함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통했는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은 채 인스타 아이디를 입력해 주었다. 머릿속은 백색소음만 가득했다. 그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뇌는 대화를 포기했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영어 단어는 모래사장 위 발자국처럼 파도에 씻겨 사라졌다. 머릿속에서 여러 문장이 바닷물 속 해초처럼 흔들렸지만, 그 어떤 것도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싫고, 절박한 순간 내뱉은 유일한 말은 뇌를 거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이 문장이었다.


“Can we take a picture together?”


셀카를 찍을지 친구에게 찍어달라고 할지 판단하는 시간은 단 0.1초였다. 친구에게 폰을 건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고, 그가 앉아 있는 선베드의 오른쪽에 앉았다. 그냥 옆에 앉아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센스만점 그는 내 목 뒤로 자신의 오른쪽 팔을 넣고, 왼쪽 팔로 나의 오른쪽 어깨를 감싸 그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게중심의 변화에 따라 나는 오른팔을 그의 허리 쪽으로 옮겼다.


내 안의 화산은 폭발했고, 동시에 바다는 그 뜨거움을 부드럽게 흡수하는 것 같았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나니 마치 마그마가 분출된 뒤 힘을 잃은 화산처럼,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싱글벙글 웃으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그의 older brother도 나를 향해 팔을 벌렸고, 그와의 포옹 인사를 마지막으로 후다닥 뛰어서 나왔다.


“딱딱했어?”

“몰라 그런 거 느낄 정신이 없었어.”


다음 날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아이폰 배경 화면으로 해놓으니, 화면을 볼 때마다 입이 귀까지 걸렸다. 앞으로 인생에 닥칠 그 어떤 힘든 일도 웃으며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비치클럽에 처음 오자마자 친해졌다는 한국인 남자애는 잘생긴 호주 남자애와 맞팔로우가 되어 있었는데, 그는 나를 팔로우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팔로우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의 계정에 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다.


‘왜 사진만 찍고 나왔을까.’


호주 소년을 만나고 이틀 후였던, 발리 여행 마지막 날, 서핑으로 유명한 꾸따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핑하고 있었다. 파도가 비교적 잔잔한 우리나라의 바다와는 달리 발리의 파도는 높고 거세기에 서핑족의 성지라고 불린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핑 강습을 받았는데 강사님이 첫날이니 보드 위에 서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하셨다. 먼저 서프보드에 몸을 알맞게 맞추어 엎드린다. 준비가 되었으면 두 손을 갈비뼈 옆으로 두고 고개를 든 채로 최대한 멀리 본다. 파도가 치는 순간 바로 일어서 균형을 잡으면 된다. 바다에 나가 실제로 해보니 서프보드 위에 서서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를 가르치던 lucky라는 이름을 가진 강사님은 내가 넘어져 바닷물을 먹을 때마다 서프보드 위에 올라와 다시 일어서 보라고 하셨다.


“올라와”

“일어나”

“자신감”


나는 서핑을 하다 바다에 빠져도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다. 파도와 한 몸이 되어 흐르듯 서핑하고 있을 그도 떠올렸다.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덴파사르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기사님께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상심하지 말라며 another handsome guy(다른 잘생긴 애)를 만나면 된다며 위로해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소녀의 마음에 그렇게 불을 질러놓고 가면 어떡해요’


배경 화면에서 나를 안은 채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며 테일러 스위프트의 Cruel Summer을 들었다.




It's new, the shape of your body

It's blue, the feeling I've got

[새로워, 너의 모습이. 푸르러, 내 기분은]


한국에 도착해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호주에서 그의 삶에 대해 상상해 봤다. 프로필 사진이 서프보드와 함께 찍은 사진인 그의 게시물에는 서핑 영상이 많이 게시되어 있었다. 서핑하러 발리를 자주 찾는 듯했다. 야생 동물을 보며 가족들과 맥주를 마시고,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며 여유롭게 사는 삶. 정신없이 공부하고 일하고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험한 바다 위를 거침없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삶.


그의 팔로잉 목록을 확인해 봤다. 함께 팔로잉 되어 있는 계정은 팔로워 수 491만 명인 테크노 & 하우스 음악 계정과 부산 남자애 인스타 계정이었다. 우리의 연결고리. 부산 머스마와 테크노 음악. 그의 형이라고 하는 사람도 추천 친구로 떴고 마침 공개 계정이어서 팔로우했다. 그들이 사진과 함께 올리는 노래는 내가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는데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가 때로는 활력이 넘치기도 했다.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마그마처럼 갑자기 내 안에서 거대한 힘이 휘몰아쳤다. 그가 내 계정을 팔로우하는 그날까지! 또 알아? 다시 만나게 될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대화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라도 볼 수 있어 기쁘다. 한국에서 살며 성취에 집착하던 적도 있었고 반복되는 삶에 지쳐있기도 했는데 삶의 이유를 찾은 기분! 사람과의 만남과 연결 자체가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니. 서로에게 관심 갖고 소통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와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호주에서의 생활이 궁금해 넷플릭스에서 호주 드라마를 보기도 하며, 다시 영어를 익숙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딘가에서 거센 파도와 함께 서핑하고 있을 그를 다시 만나게 될 순간을 떠올리니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오늘 하루도 충만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와 여행이 끝난 다음 주에 뒤풀이로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그 영화는 바로 여름에 꼭 봐야 하는 곧 재개봉할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이다. 이 영화에서 엘리오의 아버지가 사랑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엘리오에게 조언을 해준다.


Our hearts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우리에게는 몸과 마음이 단 한 번 주어지지.


And before you know it, your heart is worn out, and, as for your body.

네가 그걸 알기도 전에, 너의 마음은 갈수록 닳아 헤지고 몸도 똑같아.


there comes a point when no one looks at it,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시점이 다가온단다,


much less wants to come near it.

다가오는 이들도 훨씬 적어지지.


Right now there’s sorrow, pain.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ve felt.

지금 너의 슬픔과 괴로움,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모두 간직하렴.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사랑이 마음대로 잘되지 않아 힘들었던 4년 전이었다. 이후에도 사랑으로 힘들 때마다 이 대사를 기억하면서 마음속에 내가 느낀 감정들을 간직해왔다. 이 때문에 마음 속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가끔은 찬바람이 들어와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기도 해야 했지만


발리에서 만난 호주 소년으로 인해 갓 태어난 심장, 보송보송한 마음을 얻게 된 기분이었다.


녹슬지 않았구나! 누군가를 처음 좋아할 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구나! 여전히 내 안에 사랑이 살아있구나. 태양은 매일 나를 비추고 있었는데 내가 고개를 들지 않은 것뿐이었다. 고개를 들고 태양 빛을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달의 그림자가 지구에 닿을 때도 곧 다시 보일 해를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에 젖더라도 그 흠뻑 젖은 시원함에 즐거워하며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리해변의 나.jpeg


P.S. 발리의 파도 위에서 서핑을 배우며 깨달았다. 사랑도 서핑도, 결국 파도에 몸을 맡겨보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배경화면 속 소년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이제는 사진 속의 그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내 안에 불을 지핀 건 그였지만, 그 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낼 사람은 나니까.


Lovely meeting you at FINNS beach club!

[그곳에서 만나서 정말 행복하고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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