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고양이(1)

도쿄의 겨울, 뉴욕의 겨울

by 연하

스크린샷 2025-08-27 오후 6.44.42.png 영화 ‘버닝’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 실험이 있다. 상자 안 고양이는 1시간 뒤, 절반의 확률로 살아 있고, 절반은 죽어 있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상태다. 즉, 관찰이 곧 상태를 결정한다.

이 고양이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방에서 혼자 살아가는 나의 시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시간을 존재한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있기에 그 시간의 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1년 간의 발령 대기가 끝나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그토록 원했던 첫 자취를 시작했고, 일을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도시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애쓴 일 년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나를 끌어내리려고 애썼다. 몸과 정신에 해로운 것들을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6월 초에 달리기라는 치료제를 발견했다.


겨울이 시작된 지 한 달째.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힘을 내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무력감이 나를 자꾸만 땅속으로 끌어내리려 하기에 스스로 땅 위로 꺼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루한 회색빛 하늘이 주는 우울함을 견디기 위해 몇 명의 남자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킬링타임용 영화가 되어주었다.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겨울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혼자 도쿄와 뉴욕으로 떠났다. 1월은 도쿄, 2월은 뉴욕. 그 사이는 그저 흘려보냈다. 역시 돈이라도 있는 것이 낫다. 돈이 있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다.


도쿄의 겨울


올해는 일본 소설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 무라카미 하루키, 미시마 유키오 이런 어두운 소설들이 영혼을 울렸다. 하루키 소설은 중·장편 15권과 단편소설 4권, 에세이 걸작선 6권을 읽었고 기억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악기 울림통이 비어있어야 소리가 잘 나는 것처럼, 사람 마음이 공허할 때 그의 소설이 더 잘 와닿는다는 감상평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도쿄 여행을 가게 된 것에는 그의 소설을 읽다가 등장인물들이 걸은 산책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 이 시기에 하루키를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D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는 주로 혼자 생활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달리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요리도 하면서 산다. 그의 생활을 따라 하다 보니 외롭고 고통스럽던 생활이 위로 되는 듯 했다. 도쿄에 있는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하루키가 독자의 메일에 하나하나 보낸 답장을 엮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책을 한 권 샀다. 파파고 번역기로 한 페이지씩 사진을 찍어 한국어로 번역하며 봤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안도했다.



뉴욕의 겨울


뉴욕은 13시간을 비행해야 도착한다. 하루키의 세계를 통과하고 난 뒤, 그와 성이 같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었는데 젊음의 타락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가 쓴 <코인로커 베이비스>라는 700쪽 정도 되는 두꺼운 소설을 비행하는 동안 읽었다. 하루키가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 것을 어딘가에서 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어서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에 세 장 정도가 남았는데 다 읽지 않고 반납했다. 그래도 이 문장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성실한 여자에게는 매력이 없으므로, 나는 성실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다시 와주는 건 결국 사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