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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Aug 29. 2016

꿈에 나비가 된 장자 이야기의 의미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새로운 해석에 대하여

옛날 장주란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되었다. 활기차게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혼자 유쾌해 뜻에 맞았다. (자신이) 장주인지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깨니, 막 깨어난 모습의 장주였다. (장주는) 알지 못했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를 물화(物化)라 한다.

장자(莊子: 369?-286BC)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호접지몽(胡蝶之夢), 즉 '나비의 꿈' 우화다. 아마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던 것 같은데, 그땐 이 2,000년 전 남의 꿈 얘기를 곱씹어 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나비의 꿈 얘기를 다시 마주쳐 관련 논문을 들춰보니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다양한 모양이다. 과연 장자는 나비의 꿈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명대 화가 육치(陸治: 1496?-1576?)의 호접지몽를 묘사한 그림, 나비의 꿈(夢蝶: 몽접)

기존 해석

기존의 해석은 노장사상, 도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사물과 내가 하나가 ,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를 표현했다고 봤다. '물화(物化)' '장주와 나비가 다르지 않음', '사람과 사물이 일체가 '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것이다. 그러나  해석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분명히 장주와 나비에는 차이가 있다고 했고,  문장의 해석은 오역의 소지가 별로 없다.  


또 다른 해석에서는 '물화(物化)'를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진리'로 본다. 그러나 이 해석도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었단 얘기라면 모를까 사람이 나비가 된 꿈을 꾸다 깼다는 얘기와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

학자들의 호접몽에 대한 해석은 크게 마지막 문장의 '此之謂物化(이것을 물화라 한다)'에서 '이것'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이냐, 또 '물화(物化)'의 의미가 무엇이냐에서 갈린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요즘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과거의 해석을 뒤집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얘기한 대로 기존 해석은 '물화(物化)'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또는 '사물이 변화한다는 진리'와 같이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최근 김권환, 신정근(2015)은 마지막 구절의 '차지(此之: 이것)'가 가리키는 것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 즉 '내가 나비인지 사람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우매한 상태'로 보고, '물화(物化)'를 '物에 따라 변화함', 즉 '물질에 의해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봤다. 이어서 보면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物에 따라 변화함’[物化]이라 한다.

이보다 앞서 이용택(2014)도 '물화(物化)'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보고, '차지(此之)'가 가리키는 것이 '장주와 나비 사이에 혹 분명한 구분이 있다[고 여긴다]면'으로 해석했다.


이런 새로운 해석이 기존의 해석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나 이들 해석에서 말하는 '물질에 의해 (사람이) 변한다'는 뜻이 무엇인지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인식론적 관점의 해석

최근 연구를 따라 '물화'를 부정적인 개념으로 놓고 보면 인식론, 존재론적 관점에서도 이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화자의 자아 인식 구조를 보면 화자는 분명히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되었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즉, 화자는 당시 꿈을 꿨던 주체가 나비가 아니라 장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중에 나오는 '不知、...'는 지금도 자신이 나비인지 장주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을 때와, 꿈을 막 깬 후, 그 당시에는 자신이 장주인지 알지 못했다는 한정적인 의미로 봐야겠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다'라는 문장에서도 화자의 실질적인 정체, 본체는 장주이지 나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따라서 화자는 본인이 장주라는 확고한 자아 인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왜 장주는 꿈속에서 자신이 나비라고 인식했나? 자신의 존재와 그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차적인 수단은 오감(五感)을 통한 외부세계의 인식이다. 우리는 눈으로 자신의 신체를 본다거나, 손으로 얼굴을 만져본다거나, 귀로 목소리를 들어봄으로써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꿈은 잠자고 있는 장주의 오감을 왜곡해 날개를 달고 '활기차게 날아다니는' 나비로 자신을 인식하게 한 것이다. 상상해 보자. 양쪽에는 아름다운 나비 날개가 펄럭이고, 얼굴 앞으로는 꿀을 빨 대롱이 말려져 있으며, 날갯짓을 하는 대로 자유롭게 펄럭이면서 세상을 본다. 자신을 나비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장주라는 본체(本體: substance)가 아닌, 그의 꿈이 왜곡하고 지어낸 허상이었다.

왼쪽과 오른쪽 그림의 오렌지색 원의 크기는 같지만 오른쪽 오렌지색 원이 더 커 보인다.
A와 B는 같은 명도의 회색이지만 A가 B보다 어두운 것처럼 느껴진다 (Edward H. Adelson, 1995)
주변의 체커보드를 없애고 보면 A와 B가 같은 색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로써 장자는 우리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오감, 또한 오감에 의존하는 인식에 대한 회의를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감을 통한 감각으로 인식하는 세계는 허상일 수 있고,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만으로는 존재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 왜 이것을 '물화'라 했나? 우리가 오감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외적, 물질적 특성이다. 따라서 장자는 '물(物)'을 내재적, 본질적인 것과 대비되는 외형적, 피상적, 물질적인 것이란 의미로 사용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물화(物化)'를 '우리의 인식이 본질에 이르지 못하고 감각적, 피상적, 물질적 외형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 글을 올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들고 찾아왔다. 그 책의 2장 '사실과 진실'에서 신영복 교수는 감각적 사실에서 한발짝 물러난 시(詩)가 진실에 오히려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사유의 감각화'를 지적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대로, 즉 감각하는 그대로를 정확히 표현하려는 사실적 서사양식 보다 사실성을 때로는 무시하는 시가 오히려 본질을 파고들어 진실을 전하는 힘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본다면 '사유의 감각화'와 '물화'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장자는 나비의 꿈 이야기를 통해 감각적, 피상적 존재 인식에 대한 회의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것은 아닐까?


참고문헌

김권환, 신정근 <장자에서의 ‘호접지몽’ 우화 해석에 관한 연구>, 철학논집, 2015 (42), 391-421.

이택용, <장자 제물론 胡蝶之夢 우화의 ‘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동양철학 2014 (42), 119-153.


다른 고전 관련 글 링크


원문과 한자 해설

昔者荘周夢為胡蝶。栩栩然胡蝶也。自喩適志与。不知周也。俄然覚、則蘧蘧然周也。不知、周之夢為胡蝶与、胡蝶之夢為周与。周与胡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昔 예 석 (옛날, 예전에~)

者 사람 자

荘 씩씩할 장

周 두루 주 (荘周: 장자 자신)

夢 꿈 몽

為 될 위 (~가 되었다)

胡 오랑캐 이름 호

蝶。나비 접 (胡蝶: 나비)


栩 황홀한 모양 허 (栩栩: 활기찬 모양)

然 그럴 연

胡蝶 호접 (나비)

也。어조사 야 (~이다.)


自 스스로 자

喩 유쾌할 유

適 맞을 적

志 뜻 지

与。어조사 여 (~했다)


不 아닐 불

知 알 지

周 두루 주 (장자)

也。어조사 야


俄  갑자기 아

然 그럴 연 (俄然: 갑자기)

覚、깰 교


則 곧 즉

蘧 패랭이꽃 거 (蘧蘧 놀라서 깬 모양)*

然 그럴 연 (여기서는 ~모양의, ~그런 모양을 한)

周 두루 주 (장자)

也。어조사 야


不 아닐 불

知、알 지


周 두루 주 (장자)

之 어조사 지

夢 꿈 몽

為 될 위

胡蝶 나비

与。 어조사 여 (~인지)


胡蝶 호접 (나비)

之 어조사 지

夢 꿈 몽

為 될 위

周 두루 주 (장자)

与。어조사 여 (~인지)


周 두루 주 (장자)

与 어조사 여 (~와)

胡蝶、호접 (나비)


則 곧 즉

必 반드시 필

有 있을 유

分 나눌 분 (여기서는 구분, 분별, 차이)

矣 어조사 의 (~리라)。


此 이 차

之 갈 지 (此之 이것을)

謂 이를 위 (~라 한다)

物 물건 물

化。변할 화


* '확실히', '명백히'로 해석해 '깨어났더니 곧 명백한 장주였다'라고도 풀이한다. 그러나 '蘧蘧'가 놀라서 깬 모양을 의미하므로 그 뒤의 '然'과 함께 '방금 놀라서 깬 모습의 장주였다'로 풀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어느 해석이나 전체적인 글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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