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 연암, 쇼펜하우어와 퇴계의 지혜
연암 박지원이 "벗 사귀기에 통달했다"라고 칭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다. 그는 35세 되던 1765년 작은 아버지 홍억(洪檍; 1722-1809)을 따라 북경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우연히 엄성(嚴誠),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 이렇게 세 중국 선비들을 만나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우정을 꽃피운다. 이들 청나라 선비들의 말과 문화는 담헌의 그것과 무척 달랐고, 더구나 이들과 담헌은 시장에서 우연히 만나 단지 며칠 동안 필담을 나눈 사이 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평생 그 며칠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았다.
이 네 명의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등진 엄성은 담헌이 선물해 준 조선의 먹을 가슴에 고이 품고 죽었다고 한다. 엄성의 죽음을 지켜본 엄성의 형은 죽은 동생을 측은하게 여겨 이를 소상히 기록하고 담헌에게 편지로 보내 이 일이 조선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필담으로 맺어진 이들의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우정이 이 정도였다
그때 나눈 필담과 편지를 회우록(會友錄)이라는 책으로 엮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에게 서문을 부탁했는데 연암이 쓴 회우록의 서(序)에는 연암이 담헌에게 못마땅한 투로 묻는 내용이 있다. 왜 같은 조선 사람과는 잘 사귀지도 않더니만 중국에 가서는 문화와 습속도 다른 외국인을 그리 쉽게 친구로 받아들였느냐는 것. 담헌은 시무룩하게 있더니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破去繁文 (파거번문)
滌除苛節 (척제가절)
披情露眞 (피정로진)
吐瀝肝膽 (토력간담)
번잡한 수식어도 깨뜨리고
엄격한 예절도 버리고
뜻을 살피고 진실을 드러내며
속 마음을 쏟아 냈습니다.
청나라 친구들과는 구차한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속을 드러내 놓고 진실을 나눌 수 있었단 얘기다. 같은 조선 사람이었다면 서로가 출신, 벼슬의 고하, 당색, 학파, 나이, 집안, 적서의 차이, 이해관계 등이 규정하는, 틀에 박힌 행동양식을 벋어 나기 힘들지만 이들과는 사회가 정형화한 관계의 틀에서 벋어나 속내를 드러내 놓고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담헌의 답변에 탄복한 연암은
홍군은 벗 사귀는 법에 통달했구나! 나는 이제야 벗 사귀는 법을 알았다.
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말, 같은 문화의 조선 사람끼리는 서로 따져볼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연암은 이렇게 적고 있다.
嫌於形跡, 則相聞而不相知
(혐어형적, 즉상문이불상지)
拘於等威, 則相交而不敢友.
(구어등위, 즉상교이불감우)
(학문적, 정치적) 노선이 다름을 혐오하여, (이름은) 들어도 서로 모르고
지체가 다름을 꺼려, 만나도 구태여 친구 하지 않는다.
같은 조선 사람끼리는 그렇게 친구 하기 쉽지 않았던 반면, 담헌과 세 명의 청나라 선비는 모든 격식을 떠나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었던 것이다. 세상 어디에선가 진정으로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또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담헌의 국제적 우정을 부러워하던 연암. 담헌이 사행을 따라 북경에 간지 15년 후인 1780년, 44세의 연암은 드디어 삼종형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올 천운을 얻고, 그 결과 조선 후기 베스트셀러, <열하일기>가 탄생하게 된다.
김혈조 교수의 <열하일기> 완역본을 보면 연암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청나라의 상인, 과거 준비생, 학자들과 밤새도록 필담을 나누며 두루 우정을 나누었다. 그 우정이 얼마나 깊었던지 이들은 연암이 떠날 때 눈물로 환송하기도 한다.
파격으로 잘 알려진 연암이었지만 조선 안에서라면 불혹이 지난 양반의 신분으로 상인들과 그렇게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사회의 예법이 신분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는 틀을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헌이 북경에서 우연히 길에서 만난 외국인을 평생의 지기(知己)로 삼은 것이나, 연암이 만리타향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외국인이 가지는 일종의 예절과 관습의 치외법권(治外法權)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인은 자국인에게 적용되는 격식의 제약에서 벋어나 있다. 그래서 언어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수 있다.
반대로 규범과 관습으로 정형화돼 버린 인간관계의 틀 안에서 격식에 맞는 행동만 따지다 보면 진실된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 이렇게 격식의 틀을 깨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이 담헌과 연암이 말하는 친구 사귀기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1851년 저서 <Parerga and Paralipomena>에 나오는 고슴도치 딜레마는 어찌 보면 담헌이나 연암의 친구론(論)과는 좀 반대되는 이야기다.
이 우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온기를 찾아 모여든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가면 고슴도치의 바늘이 서로를 찌른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게 된다. 그래서 고슴도치들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의미한다.
쇼펜하우어보다 250년쯤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손자 안도 (安道)의 혼례를 맞아 보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世人都忘禮敬 (세인도망예경)
遽相狎昵 (거상압닐)
遂至侮慢凌蔑 (수지모만능멸)
無所不至者 (무소불지자)
皆生於不相賓敬之故 (개생어불상빈경지고)
세상 사람들이 예의를 잊어버려, 급히 친해지니, 급기야는 거만하고 업신여기게 되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 이는 모두 서로 공경하지 않아 생기는 것이다.
퇴계의 가르침은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가 주는 교훈과 일맥상통한다. 인간관계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해 본질적으로 같은가 보다.
요컨대 쇼펜하우어와 퇴계는 인간관계에서 예의의 부재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사회규범이라는 틀 안에서 정형화된 인간관계, 그 경직성을 경계한 담헌과 연암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면 담헌-연암의 친구론과 쇼펜하우어-퇴계의 인간관계론 중 무엇이 정답일까? 인생의 많은 문제가 그렇듯이 딱 부러지는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있나? 그러나 서로 상반되는 듯한 이 두 관점 모두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행인 것은 담헌-연암의 친구론과 쇼펜하우어-퇴계의 인간관계론 중 굳이 하나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일단 하늘을 봐야 별을 딸 것 아닌가? 허물없는 친구가 있어야 친구 간에 예의를 지키고 서로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던 말던지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우선 담헌-연암의 친구론을 따라 아무 기대나 계산 없이, 나이나 지위 등 인간관계를 정형화하는 모든 사회적 틀을 잠시 떠나 마음을 열고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진실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란 문화와 격식에 길들여지지 않은 외국인이라면 이런 마음의 '무장해제'가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순수한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교감은 친구 사귀기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 담헌-연암의 가르침이다.
일단 그렇게 허물없는 친구, 서로를 진실로 알아주는 친구가 생겼다면 쇼펜하우어-퇴계의 가르침을 따라 서로 편안한 적정 거리가 무엇인지, 지켜야 할 예의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우정을 오랫동안 지키는 관건이 될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와 친구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진실한 친구 한 둘도 없이 사는 것도 어리석다. 어떤 친구로부터 반복해서 상처를 받는다면 그 친구가 나와 우정을 나눌 상대가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친구 할 만한 사람은 많다. 조바심을 내지 말고 진솔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분명 오랜 친구가 될 인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담헌, 연암, 퇴계와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를 한 번쯤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嫌 싫어할 혐
於 어조사 어
形 모양 형
跡 발자취 적 ('形跡'을 돌베개 출판사의 <연암 산문 정독>에서는 '당색(黨色)'이라고 보았다.)
則 곧 즉
相 서로 상
聞 들을 문
而 말 이을 이
不 아닐 불
相 서로 상
知 알 지
拘 잡을 구 (이 글에서는 '꺼리다', '구애(拘礙)되다'라는 뜻)
於 어조사 어
等 무리 등
威 위엄 위
則 곧 즉
相 서로 상
交 사귈 교 (이 글에서는 '만나다')
而 말 이을 이
不 아닐 불
敢 감히 감 (이 글에서는 '구태여')
友 벗 우
破 깨뜨릴 파
去 갈 거
繁 번성할 번 (이 글에서는 '번잡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文 글 문
滌 씻을 척
除 덜 제
苛 가혹할 가
節 마디 절 (이 글에서는 '예절'이란 뜻으로 쓰였다)
披 헤칠 피
情 뜻 정
露 이슬 로 (이 글에서는 '드러내다'라는 뜻)
眞 참 진
吐 토할 토
瀝 스밀 력 (이 글에서는 '쏟다'라는 뜻)
肝 간 간
膽 쓸개 담
世 인간 세
人 사람 인
都 도읍 도 (감탄사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忘 잊을 망
禮 예도 예
敬 공경 경
遽 급히 거
相 서로 상
狎 익숙할 압
昵 친할 닐
遂 드디어 수
至 이를 지
侮 업신여길 모
慢 거만할 만
凌 업신여길 능
蔑 업신여길 멸
無 없을 무
所 바 소
不 아닐 불
至 이를 지
者 놈 자
皆 다 개
生 날 생
於 어조사 어
不 아닐 부, 아닐 불
相 서로 상
賓 손님 빈 ('따르다' 또는 '받들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敬 공경 경
之 갈 지
故 연고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