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스테이츠 대학(Pacific States University)
최순실씨가 1980년대에 강남에서 인테리어점, 유치원 등을 운영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와 같은 시기인 1981년, 1985년, 1987년에 미국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데 최순실씨가 학위를 취득했다고 연구자 정보시스템에 기재한 대학이 캘리포니아의 퍼시픽 스테이츠 유니버시티(Pacific States University) 랍니다.
현직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지만 저도 처음 들어보는 학교라 나름대로 좀 알아봤습니다. 알아보니 아마도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미국의 대학 승인제도 때문에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브런치를 빌어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언론 보도를 보시고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기 어렵지 않나 보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몰라 좀 자세하게 설명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당시 퍼시픽 스테이츠 대학은 미국 연방정부가 승인한 기관으로부터 학위과정 인정을 받은 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설학원과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지요.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등록만 하면 어떠한 영리 또는 비영리 단체도 'college(대학)'이나 'university(대학교)'를 법인명에 넣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구멍가게를 차려놓고 'OO대학교' 이렇게 등록을 하고 간판을 달아도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를 법적으로 제제할 수 없다는 얘기지요. 그 때문에 별다른 교육과정이나 시험 없이 학위를 남발하는, 소위 '학위 공장(diploma mill)'의 폐해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미국은 왜 이런 '학위 공장'이나 비인정 학위과정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요?
미국에는 연방정부가 승인하는 학위과정 인정기관(accrediting agency)들이 있고 대부분의 고등학교 입시상담사와 기업의 채용담당자들은 어느 학교가 이들 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엉터리 학교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시장의 선택과 자율에 맞긴 것이죠.
이들 인정기관은 지역별로 6개 기관들이 있는데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들 6개 지역별 인정기관을 통해 학위 과정에 필요한 요건을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지 심사받고, 그 공신력을 인정받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속해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는 '와스크(WASC)'의 인정을 받았고 이를 주기적으로 갱신하고 있습니다. 지금 마침 갱신 준비 기간이라 교직원들이 많이 바쁘지요. 갱신 심사 때는 심사원들이 방문해 실사도 하고 학생, 교수들과 인터뷰도 진행합니다. 이에 더해 각 교육과정별로도 인정심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대의 학위과정의 경우 '에이벳(ABET)'이라는 공학교육과정 인정심사가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지역별, 교육과정별 인정심사기관 말고도 온라인 강의나 특수 직업훈련을 주요 대상으로 해서 전국단위로 인정심사를 제공하는 인정기관이 몇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에이식스(ACICS)'인데요, 주로 원격강의, 온라인 교육을 통해 취득하는 학사와 석사학위과정을 인정해 줍니다.
최순실씨가 학위를 받았다는 퍼시픽 스테이츠 유니버시티(이하 'PSU')가 바로 ACICS라는 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관련 자료). 그런데 이 대학의 학위과정에 대한 ACICS의 승인이 이루어진 시점이 1996년입니다. 최순실씨가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시점이 각각 1981년, 1985년이니 그 당시는 ACICS의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죠. 더구나 ACICS는 석사학위까지만 학위과정을 인정해 줄 수 있도록 미국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았던 기관입니다. 따라서 이 대학의 박사학위는 1996년 이전이나 이후에도 미국에서 그 효력을 인정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점은 그나마 올해 9월 미국 연방정부 교육성이 아주 이례적으로 ACICS의 고등교육과정 인정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는 점입니다(관련기사). 부실한 심사로 수준 미달인 교육과정의 대학들을 대거 인정해 줬다는 게 그 이유네요. ACICS가 부실한 학사과정을 눈감아주고 '문제없음'으로 보고한 기업형 대학, 코린티안 칼리지스(Corinthian Colleges)가 작년 파산하면서 여러 가지 부실이 드러나자 교육당국이 수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 지난달 그렇게 결론을 낸 것이죠. 이에 대해 ACICS는 열흘 전인 2016년 10월 21일 이의신청을 제기했네요. 따라서 아마도 최종 결과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PSU는 이번에 승인 취소가 계류중인 ACICS 외에는 WASC나 ABET과 같은 더욱 엄격한 지역별, 전공별 학위과정 인증심사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최순실씨가 학위를 받았던 1981년, 1985년, 1987년 PSU는 그나마 ACICS의 학위과정 인정마저도 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경우 이름은 대학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가된 학교로써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졸업생이 취업을 하려 해도 미국 내에서 학위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미국 내 은행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학생대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사설 학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내 고등학교에서 이와 같은 '비인정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거의 없겠지요. 바로 이점이 PSU의 아주 독특한 학생분포를 설명해줍니다. 미국 내 고등교육기관 정보를 제공하는 제삼자 기관인 스타트 클래스(Start Class)의 자료를 보면 PSU에 등록된 총 172명의 학생 중 94%가 외국인, 즉 미국 국적 이외의 국적자입니다. 그러면 학교 전체에 미국인은 11명밖에 안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미국 학생들이 잘 안 간다는 얘기지요. 또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러한 대학을 선호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참고로 이 대학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 한 복판에 있더군요. 저도 오늘 지도를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그 앞을 무수히 지나면서도 PSU라는 대학이 거기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못 챘습니다. 구글 맵의 스트리트 뷰로 봐도 'Pacific States University'라는 문구가 건물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요.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대학의 재단 이사장, 총장, 교직원, 교수까지 대부분이 한국분들 이름이라는 점인데요, 재단 이사장은 현 건국대학교 재단 이사장, 김경희 박사로 나와있습니다. 현 안희경 총장도 건국대 소속으로 되어있네요. 아마도 언젠가 건국대학교 재단이 이 대학을 사들인 모양이네요.
스타트 클래스(Start Class)의 자료를 보면 PSU의 등록금이 $16,036, 즉 약 천팔백만 원으로, 172명 전교생이 이 금액을 낸다고 가정하면 년 30억 원의 등록금 수익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재단의 수익원은 되겠지만, 글쎄요, 그래도 건국대는 우리나라의 역사 깊은 사학인데, PSU와 건국대라... 뭔가 그 이미지나 격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좀 들긴 합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최순실씨가 학위를 받은 학교가 연구자 정보시스템의 내용과는 달리 '퍼시픽 웨스턴 대학(Pacific Western University: 이하 PWU)'일 것이라는 내용도 올라와 있더군요.
이 경우도 결국은 마찬가지입니다. PWU는 1976년부터 2005년까지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원격강의 전문 비인정기관입니다. 2004년 미국 연방정부 조사에서 이 학교의 강의를 듣고 수업료를 교육 관련 공금으로 청구한 미국 공무원이 적발됐고, 조사를 받은 후 이 학교는 문을 닫고, 그 재단은 2005년 샌디에고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미라마 대학(California Miramar University)' 재단에 팔렸습니다. 캘리포니아 미라마 대학도 원격강의 전문으로 현재 허가 취소가 계류중인 ACICS의 인정을 받았네요.
끝으로 학위 기간에 대한 소견입니다.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1985년에 석사, 1987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는데요, 제 경험으로는 볼 때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석사를 마치고 2년 안에 박사학위를 받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보통 4-5년이 걸리지요. 천부적인 재능으로 경제학이나 수학과 같은 분야에서 더 짧은 기간에 박사학위를 받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합니다.
요컨대 최순실씨가 학사, 석사,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PSU나 PWU는 당시 미국 고등교육 인정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기관으로, 따라서 그 학위는 미국 내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합니다. 물론 최순실씨가 이러한 미국 내 사정을 모르고 중개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했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학위가 정상적인 절차를 걸쳐, 남들처럼 피땀 흘려 받은 학위는 아니라는 점이 아닐까요?
지금도 학위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해 봅니다. 학위를 한다는 것. 특히 박사학위를 위해 몇 년을 연구에 매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학위증이라는 것은 종이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위의 진정한 가치는 학위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위를 얻기 위한 과정 중에 기울인 남다른 노력, 인내, 그간의 배움과 깨달음에 있는 것이겠지요. 그 과정은 무시하고 어떻게든 본인의 이름이 적힌 학위증 한 장을 얻어 처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그런 일이 터질 때마다 참 안타깝고, 우리 학생들이 진정한 노력으로 어렵게 얻은 값진 성과가 혹시나 퇴색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언론으로 접하는 시국이 참 어수선합니다. 아무쪼록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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