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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Jan 09. 2017

보도 윤리의 딜레마

'보도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시험하는 두 사례


1월 3일 <미디어 오늘>에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기고,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가 실리고 그다음 날 같은 지면에 제 반론이 실린 후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다음과 같은 취지의 질문이더군요.


이런 게 정말 문제 거리가 됩니까?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은 '보도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사회 윤리가 상충하는 상황이 때때로 얼마나 미묘한가를 두 가지 사례를 가지고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환영합니다.


사례 1: 함정수사의 유혹 

NBC 뉴스의 Dateline이라는 프로그램은 한동안 'To Catch a Predator'라는 코너를 운영했습니다. 온라인 채팅방을 개설해 미성년자로 가장한 연기자를 내세워 부적절한 채팅을 하게 한 후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연기자의 집으로 채팅 상대를 유인해 촬영하고 이를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경찰과 공조해 체포장면도 그대로 내보냈지요.


NBC가 채팅방을 개설하고 12세 미성년자로 가장한 연기자를 내세워 불특정 다수와 채팅을 하게 한 행위부터가 이미 '관찰'을 넘어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보도 대상에 영향을 미친 '개입'행위지요.


그러나  NBC의 행동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동 성 범죄자는 우리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범죄를 저지를 것이 뻔하고, 우리가 단 한 건의 아동 성범죄라도 예방할 수 있었다면 우리 활동은 정당한 것 아닙니까?  


충분히 가능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아래의 영상 2분 35초쯤부터 시작되는 대화 내용을 보실까요. 미성년자를 가장한 연기자, 케이시가 채팅과 전화 통화 후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존 엘리엇이라는 남성에게 이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유도질문을 던집니다. 이 방송은 이 남성의 입에서 자극적인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야 시청률이 오를 테니까요. 그러나 이 남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냥... 내 안에 뭔가가 있는데 말이야, 휴... 난 그냥... 이건 옳지 않아. 그것 때문에 몹시 괴로워. I just... There is something in me just... huh, I just... It's not right, you know. It has really bothered me.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죠. 이때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 크리스 한센은 이 둘의 대화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하고 급히 등장해서 말을 끊습니다.


너 인터넷에서는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확신했던 것 같던데. You seemed pretty confident out in the internet in terms of what you want to do.


존 엘리엇은 바로 체포되었고 결국 '미성년자 불법 거래 미수(attempted illegal transation involving minor)'로 20년의 신상정보공개와 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형기를 다 채워야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과 보도 방식은 과연 옳은 것입니까? 애초에 NBC가 케이시를 내세워 이 같은 채팅을 기획하지 않았더라도 과연 존 엘리엇과 같은 범죄자가 발생했을까요? NBC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범죄를 유도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더라도 아동 성범죄 예방이라는 공익실현을 위해서라면 범죄를 일부러 유도해서 보도하는 행태도 정당하다고 봐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례 2: 이 한 장의 사진

몇몇 분들이 이 사진을 언급해 주셨어요. 뼈가 앙상한 아이와 이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독수리. 이 사진은 케빈 카터(Kevin Carter: 1960-1994)가 1993년 당시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던 남수단(South Sudan)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그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지요.   

Kevin Carter, New York Times. Retaken by Cliff in 2010. Flickr (CC BY 2.0)

이 사진은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촬영에 앞서 먼저 이 아이의 생명을 구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그랬다면 당시 남수단의 끔찍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이 한 장의 사진은 존재할 수 없었겠지요. 케빈 카터는 앵글을 잡기 위해 약 20분을 소비하고 사진을 촬영한 직후 독수리를 쫓아버렸다고 합니다.  


둘째, 당시 목격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 아이의 부모는 이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었고, 이 아이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엎드려 울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는 증언도 있었지요. 만약 그렇다면 사진을 찍기 전에 아이를 먼저 도왔어야 했다는 비난은 면할 수 있게 되지만 과연 이 사진이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맞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되지요.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깝게도 케빈 카터는 33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사진 속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을 까요? 알 수 없지요. 그러나 유서로 남긴 메모를 보면 그 보다는 남수단의 처참한 기아와 수많은 죽음을 직접 목격하면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케빈 카터는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했습니까?

 



직업윤리와 사회윤리가 상충되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옳은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도 직업윤리의 추구가 사회의 안녕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되겠지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철저히 따랐다고 해서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 치하 독일군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미성년자는 성범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자칫 범죄를 조장할 수 있는 상황을 직접 만들면서까지 현장에 개입하는 NBC 뉴스 Dateline의 보도 행태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거꾸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보도 사진의 사명에 따라 아이의 생명을 구하거나 독수리를 쫒기 전에 먼저 셔터를 누른 케빈 카터의 행위는 잘못된 것일까요?


제 소견은 이렇습니다. 어떠한 경우도 자칫 불법행위를 유도할 수 있는 보도 기획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To Catch a Predator'라는 프로그램의 치밀한 유도가 없었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사람이 범죄자가 되었다면 해당 프로그램은 이윤추구를 위해 불법행위를 유발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NBC 뉴스의 입장에서는 일부 부수적 피해, 즉 범죄 의도가 없던 사람이 함정 보도에 걸려들어 범법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방송 덕분에 유사 범죄가 예방되어 더 큰 사회적 공익이 실현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보도행태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그러한 논리는 선량한 시민을 잡아 '본보기'로 가혹한 형벌을 줘서라도 범죄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의 판단은 좀 달랐습니다. NBC의 'To  Catch a Predator'는 여러 소송에 시달렸지만 함정 보도의 불법성이 문제가 되어 NBC가 패소한 사례는 없더군요. 다만 일부 주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고발된 피고발인이 전원 불기소 처분된 적은 있습니다. 법원이 채팅 기록의 증거능력에 의구심을 갖은 모양이더군요.


캐빈 카터의 경우 저는 그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독수리가 아기에게 달려드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독수리를 쫓아내고 아기를 구했어야 했겠지만 당시는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도 얼마든지 독수리를 쫓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보도윤리(상황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일)와 사회윤리(아기를 구하는 일) 중 하나를 추구할 경우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사회의 안녕과 인간 보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직업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서 아기를 먼저 구했어야 했겠지요.


용기 있게 보도 윤리 문제를 제기해 주신 박상현 이사님, 두 기고문을 나란히 실어주신 <미디어 오늘>의 이정환 대표님과 이재진 기자님, 또 다양한 의견을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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