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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Feb 21. 2016

상추와 베이컨의 환경영향 비교 기사

상추가 베이컨 보다 세 배 이상의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

상추를 먹는 것이 베이컨을 먹는 것보다 세 배 이상의 지구온난화 물질을 배출한다.


지난해 12월 15일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일제히 보도된 기사의 제목입니다.

이 보도는 언론과 SNS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죠. 국내 인터넷 언론 메인 페이지에도 올라왔더군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이 보도는 인용하고 있는 연구의 과학적 의미를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환경을 고려한 식단 선택을 돕기위해 여러 학자들이 그간 기울인 노력마저 후퇴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언론에서 인용하고 있는 학술 논문에는 '상추'나 '베이컨'이라는 단어 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상추와 베이컨의 비교는 해당 논문의 교신 저자인 폴 피시벡(Paul Fischbeck) 교수의 인터뷰 내용으로 동 대학 보도자료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보도자료의 내용이 몇몇 언론사에 의해 원문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됐고, 그 보도 내용이 다시 전 세계 언론 기관과 SNS를 통해 그대로 전파된 것입니다. 일부 매체는 한술 더 떠 이를 '채식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확대 해석해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언론보도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습니다. 피시벡 교수의 비교는 상추와 베이컨이 동일한 열량을 제공할 경우라는 점입니다. 상추는 그램당 평균 0.15 칼로리의 열량을 내는데 베이컨은 그램당 평균 5.4 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냅니다. 다시 말하면 같은 열량을 기준으로 비교하려면 베이컨의 양 보다 약 30배의 상추가 필요한 셈 이죠. 이를 2,000칼로리 식단으로 환산하면 13 킬로그램의 상추와 370 그램의 베이컨을 비교한 셈이 됩니다.  


13 킬로그램의 상추를 하루에 먹어치운다. 쉽지 않겠죠? 피시벡 교수의 비교는 음식을 섭취하는 목적이 열량에만 있지 않다는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추 v.s. 베이컨의 비교는 마치 최신 학술 정보인양 포장되어 세계 뉴스 매체와 SNS를 타고 퍼져 나갔습니다.


언론 매체들이 인용하고 있는 피시벡 교수의 논문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지 않습니다. 해당 논문은 여러 식단의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각 시나리오의 지구온난화 물질 배출량과 물 소비량에 대한 기존 논문을 분석하고 있지만 논문 어디에도 상추와 베이컨의 비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기존 연구를 보면 채식과 지중해식 식단이 육류 중심의 식단보다 여러 환경 영향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데 큰 이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엔 환경계획이 발표한 <생산과 소비의 환경 영향의 평가>는 육류와 낙농제품의 생산과 소비가 세계 경제가 야기하는 환경영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아래는 해당 보고서 원문과 그에 대한 저의 언론 인터뷰 내용입니다).

미국 환경청의 보고서 <지속 가능한 물질 관리: 나아갈 길>에서도 육류 제품을 환경영향을 가장 많이 야기하는 제품군중 하나로 분석했으며, <에너지 폴리시>에 게재된 논문, <현실적인 식단 선택의 상대적 지구온난화 영향>에서도 채식이 일반적인 식단보다 지구온난화 물질 발생을 22-26% 가량 줄인다고 보았습니다. 보다 최근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 <세계 식단의 환경 지속가능성과 건강 간의 관계>에서도 채식 위주의 식단과 지중해식 식단의 환경적 잇점을 강조했죠.  


그렇다고 채식은 무조건 환경에 좋고 육식은 다 똑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농약과 물 사용을 필요로 하는 야채나 과일이 분명히 있고, 민감한 생태계 주변이나 물이 귀한 지역에서 지하수를 뽑아 재배되는 야채라면 상대적으로 환경 영향이 높을 수 밖에 없겠지요. 육류 중심의 식단도 육류의 종류, 생산 지역, 먹이에 따라 그 영향이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생활의 환경영향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변수를 고려해 어떻게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것이며 연구 결과를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전략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여러 변수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학계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육식 위주의 식단보다 상대적으로 환경 영향을 덜 발생시킨다는 결론을 일관되게 내 왔습니다. 하루 17 킬로그램의 상추를 먹느다고 가정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당신이 채식을 즐기신다면 혹시 환경보호를 위해 육식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당신 자신 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도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시는게 좋겠습니다.


서상원 (캘리포니아대학교 환경과학경영대학원 교수)


해당 논문 원문 링크입니다.

이 글을 올린 이후 저희 그룹에서 해당 논문에 대한 논평을 같은 저널에 게재하였습니다. 아래 링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지난 12월 20일 제가 속해있는 Bren School of Environmental Science & Management의 뉴스레터에 올린 글을 국역하고 일부 편집한 것입니다. 아래 영문 원문 링크를 올립니다. 직역이 자연스럽지 않은 곳은 의역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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