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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Nov 25. 2015

송유근 사태의 원인

우리 기성 학계와 국제 학계의 표절에 대한 인식차에 대해

어제 미국 천문학회(AAS)는 <The Astrophysical Journal>에 게재된  송유근 연구원과 박석재 박사의 논문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5일 해당 논문이 게재된지 40일 만이다 (AAS의 공식 철회 공고).


철회 결정문을 보니 논문의 제 2 저자이자 송유근 연구원을 지도하고 있는 박석재 박사의 2002년 학회 초록의 내용 상당 부분을 인용 없이 가져다 쓴 것이 문제가 됐다. 한마디로 자기표절(self-plagiarism).

 문제가 된 초록이 게재된 2002년 APCTP 학회 초록집 표지

나는 박사과정을 대상으로 <연구 윤리> 과목을 가르치면서 세계 각국의 표절 및 데이터 가공 사례, 그에 따른 논문 철회 사례를 찾아 소개하고 분석해 왔지만 이번 경우는 내가 보기에도 참 드문 케이스다.


왜 그런가?


학자들끼리 서로 최신 연구결과를 토론하는 장이 바로 학회다. 학회에 본인이 무엇을 발표할 것인지를 간단하게 쓴 것이 학회 초록(conference abstract)이고 이것을 모아 책처럼 낸 것이 학회 초록집(conference proceedings)이다. 학술지  못지않은 심사과정을 거쳐 학회 초록집 게재를 결정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회 초록집에 실리는 초록은 분량도 짧고 심사과정이 없거나 아주 간략해 초록은 정식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게다가 연구자들은 보통 최신 연구결과를 학회에 발표하고 추후에 내용을 더 보강해서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때문에 학회 초록의 내용이 본인의 학술지 논문과 일부 중복되는 경우는 늘 있는 일. 따라서 학회 초록의 자기표절 때문에 게재된 논문이 철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 세계 학술지의 논문 철회 내용을 기록하고 감시하는 <리트랙션 왓치; Retraction Watch>엔 수 천 건의 철회 사례가 등록되어 있지만 이중 동일 저자의 학회 초록이 문제가 되어 논문이 철회된 사례는 2013년 <Safety Science>라는 학술지가 철회한 논문, 단 한 건으로 파악된다 (관련 링크). 그나마 이 사례는 저자의 초록이 이미 <Work>이라는 학술지에 먼저 게재된 경우라 송군의 경우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참여한 AAS의 표절 심사위원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이례적으로 광범위하다(exceptionally large)"고 판단해 심사가 시작된지 불과 며칠 만에 과감하게 논문 철회를 결정했다. 표절, 특히 자기표절이라는 것이 아직 국제적으로도 명확히 정의되어있지 않고 학제 간 인식 차이가 있어 흑백논리로 접근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철회 결정문을 보면 (1) 해당 논문이 문제의 초록을 인용하지 않은 점과, (2) 초록과 논문의 중복되는 내용이 이례적으로 많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송유근 연구원을 시기하는 소인배들의 농간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 윤리 과목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Jan Hendrik Schön 사건이다. 데이터 조작이 발각되어 <사이언스>紙와 <네이처>紙에서만도 자그만치 18개의 논문이 철회된 초대형사건이다 (황우석 박사 사건은 Schön 사건에 비하면 새발의 피). 너무나 잘 나가서 아무도 감히 의심하지 못했던 Schön의 논문에 최초로 의구심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중 하나가 당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여성 과학자였던 리디아 손(Lydia Sohn) 교수였다. 손 교수와 같은 분들의 문제 제기가 발단이 되어 연구부정 사상 최대 흑역사, Schön 게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풀뿌리' 제보자 없이는 절대로 연구부정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근절할 수 없다. 이번 송유근 연구원 사태의 경우도 표절의혹을 제기한 최초 제보자를 비난하는 행태는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Schön이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투고한 서로 다른 논문의 그림이 조금도 다른 구석이 없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근본적으로 국내 학계와 국제 학계의 표절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그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紙 논문 철회 사태 이후 교육부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교육부 훈령으로 만들어 2007년 반포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연구윤리 치침을 훈령으로 반포하고 이를 근거로 연구자를 규제한다는 것도 참 슬픈 일이지만 그 내용도 해외 유수 학술지의 표절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크다. 이 지침에 따르면 표절은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결과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로 적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지침대로라면 자신의 논문을 가져다 쓴 송유근 연구원과 박석재 박사의 논문은 표절이라고 볼 수도 없다.


열흘 전인 이달 4일 교육부는 이 지침을 개정하여 다시 훈령으로 발표했는데 여기엔 '부당한 중복게재'에 대한 내용이 처음으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개정령도 '부당한 중복게재'를 '자신의 연구결과를 인용 없이 게재하여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업적으로 평가받는 등 부당이익을 취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자기표절 그 자체는 문제로 보지 않고 자기표절을 통한 부당이익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또한 엄격해지고 있는 자기표절에 대한 국제 학계의 인식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개정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나는 지난 10년 넘게 두 국제 학술지의 부편집자(associate editor)로 일했는데 투고된 논문의 표절 여부를 파악하고 처리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부편집자의 업무 중 하나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보면 불행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 학자들이 투고한 논문의 표절 비율이 유럽이나 미국 학자들이 투고한 논문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다. 그러나 내가 다룬 동양권 학자들의 표절 중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려는 의도의 표절은 이제까지 거의 없었다. 표절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연구 윤리와 표절에 대한 교육으로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자기표절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아주 달랐던 시절에 교육을 받은 기성 학계가 하루빨리 표절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다음 세대 과학자들이 학계에 진출하기도 전에 억울하게 표절의 오명을 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번 송유근 연구원 사태의 경우도 지도 교수의 자기표절에 대한 인식 부재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학회 초록이라도 주요 내용을 인용 없이 대거 가져다 쓰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도교수로서 인지하고 학술지 편집장에게 이를 논문 심사 전에 미리 알렸어야 했다. 이제 막 연구자로서  첫걸음을 내 딧는 송 연구원이 그런 것 까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Revisited"라는 부제가 초록의 존재를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박석재 박사의 주장도 수긍하기 힘들다. 기성학계의 자기 표절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전환 없이는 앞으로 제 2, 제 3의 송유근 사태를 막을 수 없다.


학술지엔 이미 국경이 없어졌다. 오늘도 미국이나 유럽 학회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논문이 쉴 새 없이 게재되고 있다. 학계가 이렇게 국제화된 마당에 연구 윤리라고 국제화되지 않을 수 있나? 국내 연구 윤리와 국제 연구 윤리가 제각각이면 어차피 국내 연구자도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제 2, 제 3의 송유근 연구원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 학계도 국제 학계의 변화에 맞춰 대학원생과 기성 연구자에 대한 연구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자기표절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바꿔 나가야 할 것이다.


서상원 (캘리포니아 대학교 환경과학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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