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되고 싶지만 주식은 하고 싶지 않아
아 ! 테스형 답을 알려줘
'KBS1 지금 시청해봐'
자칭 펀드 매니저 강 선생이 가족 단톡 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TV에선 동학 개미 운동 의장 존봉준이 왜 가치 투자를 해야 하는지 설파 중이다. 강 선생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치투자 신봉자. 그의 집 어디서든 열 발자국 내에 주식 관련 책을 손에 집을 수 있을 정도다. 강 선생의 주식 사랑은 자녀 교육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가족 모임 때마다 가치투자의 경제, 사회적 효용에 대한 일장연설을 했고 워런 버핏, 존 템플턴, 박현주 등 투자 귀재들이 쓴 책을 자녀 집으로 배송시키도 했다.
강 선생은 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한다. 그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 대부분 깜짝 놀라며 내게 종목은 어떻게 선정하는지, 정보는 어디서 얻는지 묻곤 한다. 나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답한다. 귀에 피가 날 정도로 가치투자 얘기를 들어왔지만 난 좀처럼 주식에 곁을 주지 않는다. 주식을 도박이나 투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투자가 필요 없을 만큼 돈이 많지도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반드시 돈에게 일을 시켜야 하다는 점, 내 노후는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경제적 편식을 하는 샘이다.
놀라운 사실은 강 선생 역시 한 때 주식 투자를 금기시했단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청약할 수 있는 사람은 다 했다던 88년 포항 제철, 89년 한국전력 국민주 청약 때 그는 도리어 자신 명의를 동료에게 빌려줬다. 자기 자리에서 성공하면 돈은 뒤따라 오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식하는 동료들이 허구한 날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오욕 칠정에 휘둘리는 모습도 한몫 거들었다. 그렇게 주식 보기를 돌 같이 하며 IMF 외환 위기도 무사히 넘긴 그에게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 찾아오게 된다.
90년대 후반 닷컴 기업들을 필두로 한 IT산업이 각광받기 시작하며 주식 시장에 많은 현금이 유입된다. 신산업에 대한 기대감과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벤처 육성 정책이 급격한 테마주 쏠림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투자자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고 새롬기술, 하우리, KTF 등 IT 주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했다. 여기저기서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들려오자 강 선생은 위기감마저 느꼈다. 얼마 후 그는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광고로 유명했던 하나로 통신을 시험 삼아 매수한다.
주가는 일주일 사이 거의 두배로 뛰었다. 한 달을 일해야 벌 돈을 며칠 만에 손에 쥐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시대착오적 경제관에 사로잡혔던 자신을 책망하며 당시 부부가 모아뒀던 적금과 은행 대출 그리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하여 주식에 태운다. 영끌 빚투 한 것이다. 성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며 꾸준히 기본을 다지라 강조하던 그 역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닷컴 버블이 꺼지며 시장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한국 벤처기업들도 줄줄이 상장 폐지되어 코스피는 500P 선으로 주저앉는다. 대박의 꿈은 그렇게 쪽박이 되었다.
강 선생 가족은 파산했다. 친인척 도움으로 간신히 차압을 면했을 뿐이다. 흔한 짜장면에 탕수육 한 그릇이 사치가 됐다. 부부는 자주 그리고 심하게 다퉜다.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강 선생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스스로를 향한 분노를 가족들에게 표출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 유 선생이다. 그녀는 돈 문제로 싸운 날이면 우리 방에 찾아와 너희는 커서 주식 같은 건 하지 마라 울며 불며 애원했다. 이 기억은 뇌리에 강렬하게 색인되어 내 이성과 감정이 감지 하지 못 하는 아주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삶의 이정표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여전히 발길 닿는 곳마다 주식 얘기가 한창이다. 회사 동료들은 날마다 투자 정보를 교환하며 '월급으로부터 독립'을 외친다. 데이 트레이딩이든 장기 투자든 각자의 방식으로. 국내외 이슈를 주시하고 미래를 저울질하며 투자 종목을 선별하는 이들을 보면 내게도 20년 전 강 선생이 느꼈을 불안감이 찾아온다. 나 역시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주식은 하고 싶지 않다. 이런 태도가 운전석에 앉아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다', '생의 저녁에 이르면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놓고 심판받을 것이다'와 같은 폭신폭신한 말 뒤로 숨고 싶진 않다. 경제력 없이 행복을 바라는 건 군사력 없이 평화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아 테스 형은 답을 알까. 너무 걱정하진 말자. 재테크든 인생이든 정답은 없어도 해답은 많은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