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씹과 안 읽씹 중 무엇이 더 기분 나쁜지에 대해 토론하는 글을 봤다. 읽씹이 더 나쁘다는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을 거면 읽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읽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하는 것이 예의라는 입장이다. 안읽씹 진영에서는 읽씹은 적어도 읽는 성의(?)라도 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소위 '1'을 내팽개쳐두는 게 더 짜증 난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 바로 답하기 힘든 점은 이해할 수 있으나 안읽씹은 의도성이 다분하다는 이유다. 읽씹/안읽십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해주는 컨설턴트까지 있는 걸 보면 이 문제는 사람들에게 퍽 중요한 문제인 듯하다.
2016년에 카카오톡에서 설문을 바탕으로 '톡 티켓'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당시 카카오는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이 존재하듯, 카카오톡 이용에도 에티켓이 필요하다”며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이용자들이 서로 배려하며 카카오톡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으나 이후 공표된 톡 티켓은 없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나는 읽씹 논란과 같이 쉬이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부분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에 메시지를 받은 사람 반응이 예의가 있다 없다를 쉽게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메신저나 SNS에서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해야 할까. 개인 톡 중 답장이 1시간을 넘기면 무례한 것일까. 평일에는 일하느라 바쁘니 하루 정도는 늦어도 괜찮은 걸까.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면 휴가지에서도 밀려오는 카톡들을 신경 써야 할까. 카톡 대화를 끝낼 때 이모티콘과 긍정적 메시지가 없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인가. 디지털 메시지에 답장하는 일에 개인의 선의와 배려심을 넘어 어떤 도덕적 기준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카톡이나 SNS 메시지에 답장하는 일에 꽤 많은 에너지가 든다. 읽고, 생각하고, 적절한 톤과 매너로 답해야 한다. 이모티콘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대면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할 때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단톡방에서는 이전 대화 맥락을 파악해야 하고, 갠톡에서도 상대방 감정과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 둘 답장을 보내다 어느 순간 그냥 포기한다. 에너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읽씹 빌런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달리 메시지를 받자마자 답장하고, 즉각 즉각 상대의 필요에 응해주는 분들이 있다. 요즘 세상은 그런 사람을 원한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빠르게 응답해주고 많은 메시지를 처리하는 사람이 생산적이라 평가받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메시지에 대한 반응속도와 처리량이 곧 그 사람의 생산성이 되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처럼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답장을 미루는 사람은 게으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좀 게으르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수없이 밀려오는 디지털 자극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현대인들은 어쩌면 항상 정보 과부하 상태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마음껏 디지털 안식일을 누리고 싶다. 한 사람의 가치가 타인을 위해 얼마나 생산적으로 대응하는지로 평가받을 수는 없다. 얼마 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샷을 맥주를 마시며 맨 눈으로 지켜본 한 남성이 벼락 스타가 됐다.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어 촬영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그만이 오롯이 순간을 만끽한 것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핸드폰 대신 맥주를 들었을 뿐인데 스타가 되다니. 게으른 읽씹러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