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 첫 일정은 캠핑카 수령. 시내버스를 타고 렌터카 업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버스 가격이 400kr였다. (한화로 약 4,600원) 거스름돈은 없다. 이름만큼 쿨 한 나라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 대중교통 요금에 감사했다. 아이슬란드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버스 노선이 레이캬비크와 수도권을 커버하긴 하지만, 이용 요금이 비싸고 배차 간격도 상당히 길기 때문이다.(특히 주말에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기도 하다) 택시 가격은 더욱 비싸다. 아무리 국가 경제의 많은 부분을 관광수입에 의존한다지만 교통 요금은 정말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아이슬란드 국민 대부분이 영어 의사소통에 능하다는 것이다. 유럽권 국가 대부분이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지만, 아이슬란드처럼 절대다수가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나라는 처음이었다. 10대 아이들부터 60대 할머니까지 하나같이 영어를 잘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의무적으로 공부한다. 언어라는 것이 눈과 손으로만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반드시 귀와 입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내가 말하고 또 그 말을 듣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야지만 그 언어가 체득되기 시작한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13~15세 때부터 일을 시작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과 만나면서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던 것이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Go Camper 사무실에는 20 대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우리 차 수령을 도왔다. 우리나라 렌트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제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렌트할 차의 상태와 보험 약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어서 아이슬란드 기상, 도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와 운전 주의사항 등을 얘기해 줬다. 건물 한편엔 이전 여행객들이 두고 간 다양한 식재료와 캠핑 용품들이 모여있는 선반이 있었다. 식자재뿐 아니라 가스, 화장지 등 여러 가지 물품들이 있었다. 우리는 휴지와 소금을 챙겼다. 직원은 반납할 때 오후 6 시가 넘으면 자기들은 퇴근하니까 그냥 차를 두고 약속한 장소에 열쇠만 두고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쿨한 동네다. 그렇게 차를 수령하고 본격적인 레이캬비크 여행이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여느 아이슬란드 여행객들이 그러하듯 할그림스키르캬 교회였다. 아이슬란드는 국민의 70% 이상이 대부분이 루터파 교회 신자라고 한다. 그에 비해 교회 숫자는 많지 않은 걸 보면 모두가 독실한 신자는 아닌 것 같다. 할그림스키르캬 교회가 유명한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높은 건물(74m)이기 때문에 시내 어디서든 잘 보인다는 것, 두 번째는 레이캬비크 여행의 출발지로서 꽤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건물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전망대. 교회 내부로 들어가니 역시 소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갈 수 있었다. 가격은 900kr. 우리는 만 원짜리 엘리베이터는 탑승하지 않기로 했다. 할그림스키르캬 교회는 정면에서 보면 양 옆은 주상절리를 형상화하였고 윗부분은 바이킹의 모자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안타깝게도 주상절리보단 고등학교 때 배운 적분이 자꾸 떠올랐다..)
아이슬란드의 상징 중 하나인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교회 구경을 마치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점심 먹을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Cafe Loki라는 아이슬란드 전통 음식 식당이 눈에 띄었다. 비도 오는 데다 배가 무척 고팠기 때문에 곧바로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Cafe Loki는 작은 식당이자 Bar였는데, 관광지 특수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역시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음식 맛 역시 특별히 맛있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배고픈 우리는 요기를 할 수 있었다. (함께 간 형은 고기 수프를 시켰는데 당근 수프가 나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Cafe Loki. 1층은 식당, 2층은 Bar이다
다음 할 일은 Bonus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었다. 레이캬 비크 북서쪽 Bonus 마트를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근처에 콜라포르티드 벼룩시장으로 발을 돌렸다. 가는 길에 익숙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바이야린스 베즈티라는 핫도그 집이었다.
핫도그 받침대가 인상적이다. 대부분 2개씩 주문한다
꽃보다 청춘에 나오기도 했었는데 미국 전 대통령인 클린턴이 방문한 이후 유명세를 치렀다고 한다. 뉴욕 핫도그 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것을 보면서 매스컴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라포르티드 벼룩시장에 도착했지만 역시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슬슬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이 무슨 공휴일인가? 슬픈 예감을 틀린 적이 없다 했던가. 내일이 Whit Monday(성령 강림절 월요일)로 아이슬란드 공휴일이었다. 연휴 기간이었기 때문에 문을 닫은 것이다. 장을 보는 것은 다음날로 미루고 여행을 계속해야 했다.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인 하르파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이슬란드에 존재하는 현대식 건물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아닐까 싶다. 하르파는 오케스트라, 앙상블, 오페라, 밴드 등의 공연이 열리는 아이슬란드의 문화 1번지이다. 건물 전체가 크리스털 모양의 유리 외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에는 큐브 모양 거울로 된 천장을 볼 수 있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또한, 하르파는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서 이 유리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선 이국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세계적인 수준의 콘서트홀인 하르파
하르파를 둘러보고 라이캬르가타(아이슬란드어의 정확한 발음은 너무 어렵다..) 길을 따라 다시 남쪽으
로 걸었다. 시내에는 2~3층 정도 높이의 삼각형 모양 박공지붕 건물이 가장 많았다. 레이캬비크 건물들은 다양한 색감의 페인트를 통해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레이캬비크 시내 전경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대부분의 건물들에 완공 연도로 추정되는 숫자가 써져 있다는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건물의 나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주었다. 시내를 돌아본 우리는 티요르닌 호수 쪽으로 향했다. 하늘의 먹구름이 조금씩 걷혀 아름다운 윤슬을 볼 수 있었다. 여행 안에도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 안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호수는 우리에게 그것을 제공해 주었다.
티요르닌 호수.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쓰이다고 한다
차로 돌아오는 길에 Cafe Paris에 들려 간단히 맥주 한 잔씩 하고 레이캬비크 ECO 캠핑장으로 향했다. (visiticeland.com에서 아이슬란드 각지의 캠핑장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레이캬비크 캠핑장. 훌륭한 조리,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다.
레이캬비크 시내와 가장 가까운 캠핑장으로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아이슬란드 캠핑장 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또한, 시내와 도보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어 펍에서 맥주 한잔하고 싶은 캠퍼들에게 유용하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샤워를 했다. 아이슬란드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 잠자리에 걱정이 좀 있었지만, 침낭과 모포가 생각보다 따듯해 잠을 청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아마도 자기 전에 마셨던 위스키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슬란드 여행 첫날 레이캬비크 투어가 마무리되었다. 내일부터는 대망의 링로드 투어가 시작된다. 백야 때문인지 아니면 날것의 지구와 마주할 설렘 때문인지,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