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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Oct 03. 2021

엄마의 동네 한 바퀴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ep.11

  엄마는 주말엔 이른 저녁시간부터 분주하다. 밥통에 쌀을 사뿐히 안치고 돼지고기를 듬성하게 썰어낸다. 그러고는 팔팔 끓는 김치찌개 국물에 고기를 텀벙텀벙 넣는다. 그렇게 부리나케 주방 일을 마친 엄마가 거실 리모컨부터 잡는 건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보기 위해서다. 배우 김영철 씨가 고즈넉한 전국의 동네를 돌아다니며 팍팍한 일상을 느리게 돌아보는 도시 기행 다큐멘터리인데 퍽 평온한 느낌을 준다. 엄마는 이 TV 프로그램을 참 좋아한다.


  얼마 전이었다. 해가 뜨고도 넘어갈 시간까지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여동생이랑 나눈 대화가 내심 마음에 쓰인 탓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갑 하나만 집어 든 채 무작정 엄마 집으로 향했다. 해가 더 저물기 전에 집과 가까운 유원지라도 엄마를 모시고 다녀와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엄마는 원래도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뇌경색 판정을 받고 나서 활동반경이 더 좁아졌다. 아프기 전엔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인근 바닷가에서 칼국수를 먹고 돌아와서는 바지락이 한 바가지나 들어있었다며 자랑을 하던 엄마였다. 그렇게 가끔은 교외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콧바람을 쐬기도 했지만 이젠 평범한 일상도 힘에 부친 탓일 것이다. 아직은 젊고 건강했던 엄마.  그런 엄마가 뇌경색에 걸린 게 아무래도 집 지키는 강아지처럼 동네 주변만 맴돌며 살아서 그런 건 아니겠냐는 여동생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고작 십 분이면 도착하는 부모님 댁을 걸어가면서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집 앞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여사님. 집어 든 오징어 내려놓으시고요. 연꽃 유원지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엄마를 납치하듯 택시에 밀어 넣고는 “기사님. 유원지 정문으로 가주세요~” 하고 엄마를 쳐다봤는데 내심 좋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택시로 이십 여분 만에 도착한 유원지는 연분홍빛 연꽃이 지평선 너머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주인 따라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진초록 잔디밭을 폴짝이는 모습. 유모차에 갓난아기를 태운 신혼부부의 경쾌한 발걸음. 초코 반 바닐라 반 소프트 아이스크림 콘을 쪽쪽 빨아먹는 어린아이들. 우리는 그들이 거니는 주변 어디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모시고 오니깐 이렇게 연꽃도 피어있네. 카페에서 커피랑 와플도 사드릴게.” 그러고는 줌바 동작을 몇 개 가르쳐주겠다며 시범을 보였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서 아줌마들이 추는 에어로빅이냐면서 낄낄댔다. 그때 물가에서 팔뚝만 한 잉어 떼가 펄떡 뛰어올랐다. “집 근처 호수공원에 사는 잉어도 저렇게 솟아오르더라고? 저건 무슨 신호래?” 엄마의 호기심에 나는 참 별난 곳에도 관심을 준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생각 하나가 스친다. 엄마는 남편과 자식들이 출근하면 빈 집을 홀로 빠져나와서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어쩌면 평생 엄마를 동네 어귀만 맴돌게 만든 것이 전부 우리 탓인 것만 같았다. 사업하는 남편은 툭하면 “여보. 동사무소 가서 서류 좀 떼놔.” 여동생은 “엄마. 세탁소에서 원피스 좀 찾아 줘.” 이렇듯 가족의 소소한 잔심부름은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퍼뜩하면 엄마 신간을 사납게 만들었으니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자주 미안한 마음인 딸은 연꽃 봉오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팔짱을 끼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코로나 잠잠해지면 백화점 문화센터도 다니고 엄마 좋아하는 화실도 다녀. 요가 학원도 다니고 이참에 피아노를 배워볼래, 엄마?” 나는 뇌세포가 살아나기 위해서라도 여러 자극들을 시켜주는 게 좋겠다는 동생과의 대화가 생각나서 열심히도 주절댔다. 그러자 엄마는 옆구리에 바짝 들러붙은 내 팔을 빼더니 슬며시 손깍지를 낀다.


  엄마는 흔하게 가는 동남아 여행조차 못해본 것이 여유 없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부끄러울 때도 있었노라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몸이 아프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는 엄마의 얼굴에선 맑은 빛이 비친다. 이젠 아파트 단지 벤치에만 앉아있어도 이렇게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평온하단다.


  “에이. 그래도 사람이 시야가 좁아지면 생각도 제한적으로 변하지 않겠어?” 내 말에 연꽃이 핀 물가의 새들이 푸드덕 날갯짓을 한다. “우리 어릴 적에 할머니는 개나 고양이나 닭이든 간에 앞마당으로만 오면 훠~이 훠~이 했잖아. 그렇지?” 내가 훠이 훠이 거리며 할머니 시늉을 하자 엄마가 그런 나를 퍽 귀엽다는 듯 바라본다. 엄마는 마음을 새처럼 자유롭게 가지면 세상이 더 넓게 보이는 법이라면서 걱정하지 말란다. 이대로도 참 행복하다면서.


  이번에도 나는 엄마를 잘 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나무로 따지면 나이테가 어마어마하게 큰 아름드리나무다. 이십 년 넘게 사는 아파트 단지를 둥그렇게 감싸고도 남을 만큼의 거대한 엄마 나무. 엄마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으니까 우리 가족은 엄마의 따스한 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엄마는 늘 동네만 서성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세상 밖에서 자유롭게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듬직한 울타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마음 쓰지 마라.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이 스페인이고 프랑스고 베트남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야.” 이렇게나 무한한 엄마라는 나무. 비록 몸은 한 곳에 묶여있지만 엄마의 생각은 세계 곳곳을 누빌 만큼 초월해 있었다. 가끔 엄마와 동네 한 바퀴를 돌 때면 가는 곳마다 엄마를 알아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거리 정육점 아저씨 큰 딸 결혼 소식. 아파트 단지 수선가게 아주머니 둘째 아들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 엄마가 누비는 동네 골목마다 당신들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모르긴 몰라도 엄마가 원하는 건 당신의 동네 한 바퀴를 대수롭게 여겨주는 마음일 것이다. 엄마의 동네 한 바퀴는 언젠가는 전국 한 바퀴가 될 테니깐. 그러니까 지금은 세계 한 바퀴가 될 만큼 자유롭게 지구를 누비기 위한 도움닫기이지 않을까. 새처럼 훨훨 날고 싶은 건 그 누구보다 엄마 자신일 것이다. 내가 “엄마. 병원에 입원했을 때 뇌세포 사진 뽑아서 침대 맡에 붙여놨던 거 생각나?” 하며 말을 꺼내자 엄마는 “당연하지~ 엄마가 그때 우리 딸 별 희한한 짓도 잘한다 싶었지.”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나는 그때 병실 침대 맡에 사진만 붙인 게 아니었다.「엄마의 뇌세포가 살아납니다. 건강하고 어린 뇌세포들이 팡팡 솟아납니다.」라는 문구도 크게 인쇄하여 병원 침대 맡에 몇 장이고 붙여놨었다. 마치 자라나라 모발 모발이 아니라 자라나라 건강한 뇌세포 뇌세포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엄마는 이번 주말에도 김영철 씨의 동네 한 바퀴를 보며 저녁을 먹을 거다. 저이는 어쩜 저렇게 고운 말씨를 가졌냐면서 리모컨의 볼륨을 더 높이겠지. 엄마의 삶은 다채롭진 않아도 유원지의 호수처럼 넓고 하늘의 구름처럼 쾌청하고 포근하다. 동네 골목처럼 아기자기하다. 엄마가 동네 한 바퀴가 아니라 수십 바퀴. 아니 수십만 바퀴를 돌고도 남을 만큼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팔짱을 더 깊게 껴본다.





※  <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의 연재 글마다 엄마의 짧은 소감문이 하단에 실립니다

- 딸이 쓴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엄마가 딸에게 화답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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