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19 와 학교
자려고 누웠다가 불안해서 일어나서 다시 한번 업로드 된 강의를 확인하고 4시에 다시 자리에 누웠다. 2시간 30분 정도 잠을 자고 출근을 했다. 8시에 딱 맞추어 '강의 오픈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 강의를 올리는 요일이다.
수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탭을 사용해본 적 없던 나도 이제 탭을 활용해서 화면녹화를 한다. 각종 앱을 사용해서 인트로도 만들고, 자막도 넣고, 화면 분할하는 일도 제법 능숙하게 해낸다.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서 EBS클래스에 연동시킨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정하게 맨 선생님이 빈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목소리가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올해 정년 퇴직을 하시는 분이다. 뒤창문으로 들여다 보니 알 수 없는 화학식이 칠판 한가득이다. 반사판까지 준비하셔서 촬영을 하고 계신다. 실험복을 입은 생물 선생님은 생물실을 돌아다니며 영상을 찍고, 음악 선생님은 음향이 들어간 영상을 편집하느라 진땀을 뺀다. 각종 영상편집 앱을 찾아내서 알려주시느라 여념이 없는 선생님, 먼저 수업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온갖 시행착오와 아이디어를 공유해주시는 3학년 선생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귀동냥을 하는 나같은 천덕꾸러기 선생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려는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정보를 나누고 배우려는 선생님들의 뜨거운 열정이 가보지 않은 길을 기꺼이 갈 수 있게 해주는 요즘,
그런데, 마음이 편안한 것이 못내 꺼림칙하다. 한산한 학교, 언제 갑자기 '선생님~'하고 들이닥칠지 모르는 숱한 사고와 이야기들이 제거된 한갓진 평화로움. 언제나 바라던 평화로운 오후 5시. 내가 짠 교안대로 수업하고, 내가 짠 계획대로 일들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이곳은 세기의 환란에서 잠시 비껴나간 아늑한 곳. 매크로를 돌리는지, 뭘 어떻게 하는지 신경만 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100프로 완강을 하고, 정확한 시간에 조종례에 들어온다. 왜 늦었냐, 조금밖에 안 늦었다, 왜 자냐, 왜 자면 안 되냐, 게임하지 마라, 게임하면 왜 안 되냐, 서로 서로의 신경을 사포로 긁어대던 관계가 너무 아름답고 부드러워졌다. 내가 공개한 카톡으로 질문도 예의 바르게 들어온다. '샘~ 그거요'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저는 3학년 몇 반의 000입니다~'.
"얘들아, ~~ 야, 니네가 나였어도 열라 짜증나지 않았겠냐? 아, 진짜. 결혼은 하는 게 아니야" 라는 거친 말 대신 "만약,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저 웃어 넘기기는 어려웠을 거에요. 그럼 남은 오후 시간 행복하게 보내고, 내일 우리 다시 만나요!" 라는 생전 처음 해보는 예쁜 말들이 입에 술술 잘도 나온다. 그런데 과연 '여러분들'과 '저'가 정말 말처럼 아름다운 관계일까.
어제 롯데몰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왠지 우리 학교 학생일 것 같은 폼새의 아이들이 우르르 우르르 건넜다. 그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사를 반가워해줄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확신할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 옆반 선생님은 전화와 줌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셨다. 이 좋은 관계가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 또한 그러하다. 퍼 자는 애들, 똥 씹은 표정을 멍 때리는 애들, 어디 한 번 잘하는지 두고 보자는 애들, 이런 애들 대신 이상화된 청자를 앞에 두고 내 하고 싶은 말을, 곱고 아름다운 언어로 쏟아내면서 자아도취되고 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위험에 직면한 공동체가 피어 올린 아름다움 때문인지, 적절한 거리두기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온 것인지, 겉으로만 그러는 척 하는 것인지, 공허한 아름다움인지, 헷갈린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지방을 건너는 흥분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그래서 너희들이 오는 것이 조금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