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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May 06. 2020

은밀한 컬렉션

- 지극히 사적인 책 읽기

아들 방을 만들어주려고 책장을 거실로 내놓았다. 이제 10살이 된 아들에게 방을 만들어주기 위해 무릅쓴 노동이었다. 나와 한 침대에서 자는 아들이 요즘 들어 부쩍 자기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는, 내 핸드폰을 자기 베개 아래 깔고는 '아이유'와 '볼 빨간 사춘기'의 노래를 듣는다.


 공간을 만들기 위해 책장을 거실로 끄집어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겨 보기 좋게 꽂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책장을 옮기기도 전에 지쳐서 언제나처럼 마구잡이로 책을 끼워 넣었다. 어린이날인데, 우리는 뭐하냐고 투정하는 아이들에게 이 일 끝나면 장난감 사러 갈 거라고 꼬드기면서 책을 꽂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거 다 알아?


그럴 리가.


엄마, 다 읽을 거야?


설마, 그럴 리가.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의 먼지를 털면서 다시 꽂는다. 종류별, 작가별 혹은 출판사별로 책을 꽂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어 또다시 마구잡이로 꽂다가, 은밀하게 맨 위에 딱 한 칸, 아무도 모를, 나만의 컬렉션을 만들었다.



오르한 파묵, 샨사, 오정희, 미셀 투르니에, 아니 에르노......


우리나라에 출판된 이들의 책은 거의 다 소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알아볼 사람들만 알아보라는 심사로 이들의 책 한 권씩을 뽑아서 칸을 만들어 놓고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거실에 앉아 이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만져 봤다. 읽지는 않았다. 만져만 봐도 가슴이 조금 벅차올랐다. 사실 이 책 내용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강, 이스탄불은 이스탄불에 대한 내용, 바둑 두는 여자는 중국인 소녀와 일본군 장교의 사랑이 이야기, 예찬은 삶의 순간들에 대한 예찬, 마호메트는 평전은 말 그대로 마호메트 평전, 부끄러움은 노동 계급 소녀가 부르주아로 올라가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한 자기 고백. 적어놓고 보니,  제대로 기억도 하지 못하는 독자에게 이 책들의 내용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렇다 내용이 무슨 소용인가. 중국인 소녀와 일본군 장교가 바둑 두는 이야기가 지금 유투버가 된 한국의 교사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독교 학교에 근무하는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 마호메트의 일생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런데도 불타오르는 이 책장에서 내가 갖고 도망 칠 책들을 꼽으라면 이것들일 것이다.

(지금은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 안의 글자들이 만들어 낸 힘들은 너무 강렬해서 그 힘에서 나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 힘의 강렬함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강렬함이 나의 미래를 견인했다. '바둑 두는 여자'를 읽음으로써, 나는 그 이후 샨사의 모든 소설들은 물론이고 천안문과 관련된 책과 영화들을 찾아 읽고 보았으며, 더 나아가 위화, 다이 시지에, 쑤퉁, 하진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내가 아는 중국은  이들이 만들어 낸 세상이다.


마호메트 평전은 내가 가진 책 중에서 가장 많은 포스트잇이 붙은 책이다. 2004년 경에 이 책을 읽고 이슬람에 관한 몇 권의 책과  위대한 인물들의 평전을 찾아 읽어보았지만, 이토록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평전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신부인 게오르규는  "두 개의 무한에 갇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원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었다"라고 했다. 종교의 탄생은 이런 것이었다.  사막, 두 개의 무한, 그 안에 갇힌 인간, 영원이라니. 아름다운 말들이 다 들어가 있다.


표지가 너덜너덜 닳은 "예찬"은 내가 여러 번 읽은 몇 안 되는 책이다.  여러 권을 갖고 가봐야 읽지 않는다는 것을 그 전 여행에서 체득한 나는 최윤의 소설집과 "예찬"과  문고판 일본 소설 몇 권을 싸서 여행을 떠났고, 리스본에서 만났던 여행자에게 최윤의 소설집을 주고, 일본 소설인 문고판은 일본애가 한국 글자로 찍힌 일본 소설을 갖고 싶다고 해서 줬다. 모로코에 갔을 때 내게 남은 것이 "예찬" 뿐이었다.  8월의 모로코는 더웠다. 숙소에도 없던 에어컨이 맥도널드에 있었다. 페스의 맥도널드에서, 해 진 카사블랑카의 노천카페에서, 한국어가 너무 그리워서 읽고 또 읽었다.  "10유로나 쓰다니 미쳤어", "너무 지겹고 덥다" 이런 글자들이 책 모퉁이에 적혀 있다. 부치지 않은 낡은 엽서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때만 해도 여행지에서 우체국을 찾아가서 국제우편으로 엽서를 보냈다.



2020년, 5월 5일에 내가 만든 나의 컬렉션은 지금과 가장 맞닿은 어느 시점의 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한 것들은 되지 못한다. 나에게 책이란, 책 읽기란 내용의 습득이 아니다. 들뢰즈식으로 말하자 자면 '기호와의 우연한 부딪힘'으로 내가 변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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