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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Jan 29. 2023

'나날들'보다는 '젊은 날'

[2023년 프로젝트 1] ‘그래도, 우리 젊은 날’(시바타쇼, 한마음사)     


‘더 글로리’를 보는 내내 작가가 ‘바둑 두는 여자’에서 동은과 남성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을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겨 놓고 내내 좋아하는 것들, 특별한 이에게만 은밀하게 내보이고 싶은 것, 일상이 삐끗하는 순간, 남몰래 생각하는 그것. 그것을 알고 있는 이를 만날 때 겹겹으로 쌓인 마음의 붕대는 하늘로 훨훨 날아 올라간다. 그래서‘더 글로리’를 보면서 어서 빨리 ‘바둑 두는 여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대문학사에서 나온 ‘바둑 두는 여자’는 찾지 못했다. 책장 맨 아래 깔려 있을까 소파를 밀어내면서까지 뒤졌지만 결코, 내가 버렸을 리 없는 그 책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붉은 책장을 넘기면 다시 생각날 것만 같은데, 어린 소녀와 일본군 장교가 침묵 속에서 바둑알을 하나하나 놓으며 매혹적으로 서로를 훔친다는, 이 엉성한 줄거리와 함께 산샤의 글이 아니라 ‘산샤를 좋아했던 20대 중반의 나’만 생각났다.      

 

마침 1월 첫 주였다. 2023년에는 ‘숨겨 놓고 내내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읽기로 했다. 찾지 못한 ‘바둑 두는 여자’(현대문학사)는 제쳐두고 눈에 가장 먼저 띈 ‘그래도, 우리 젊은 날’(시바타 쇼, 한마음사)을 원대한 계획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소설가 조00과 유흥을 즐기던 시절에 00이가 소개해 준 책이 ‘그래도, 우리 젊은 날’이었다. 믿을 만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소개해 준 책이라 망설임 없이 구입했지만 일본 운동권의 후일담 문학이라는 소개가, 90년대 후일담 문학을 읽을 만큼 읽은 나에게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우리의 대학 생활은 후일담 문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경험하지 못했지만, 풍문으로 듣고 들은 이야기들. 대학 1학년 1학기 ‘교양국어’ 시간에 지금은 왜 그 책이었나 싶지만, 어쨌든 19살의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있는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만 했다.(박일문은 성폭행범죄자다) 수업에서 재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던 나는(우리는) 골방에서 닥치는 대로 소설만 읽었으니, 그 대부분이 후일담 문학이었다. 90년대는 후일담의 시대였다. 프랑스 68 혁명의 후일담, 일본 전공투의 후일담, 한국 80년대 운동권의 후일담.      


‘그래도, 우리 젊은 날’은 일본공산당 운동에 참여했던 후미오가 서점에서 서명이 되어 있는 한 질의 책을 운명처럼 구입하면서 시작한다. 헌 책의 주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만난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와 유서를 통해 전후 일본 엘리트 청년들의 고뇌와 번민을 서로(정말 자신들이 당사자인데!) 이해하기 시작한다. 번듯한 엘리트 직장인의 외피를 갖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숨겨야 하는 ‘우리 젊은 날’의 고민과 방황은 그들 마음에 뻥 뚫린 구멍을 만든다. 후미오의 하숙집 앞 공터에 흙먼지가 불어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날들을 ‘그래도, 우리 젊은 날’로 바꿀 수 있는 것은 흉터로 남은 젊은 날의 이상과 과오, 추잡한 욕망과 불안을 직시하고 서로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다는 거, 내 마음에만 흙먼지가 불어 오르지 않는 거. 연인이었던 후미오와 세쓰코가 서로의 젊은 날을 알아보는 과정은 이별, 그리고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으로 향해나가는 길이 된다. 이런 역설은 소설을 관통한다. 가장 명징한 꿈과 계획을 가진 이야말로 헛된 신기루를 잡고 살아간다. 이렇듯 세상의 외피를 한 겹 들추면 보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모두들 그 풍경을 움켜쥐고 산다.


이제는 함께 놀지 않는 옛 친구가 그때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왜 그때 이 책에 열광하면서 수없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이 책을 싸들고 다녔는지 생각해 본다. 다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평론가 신형철이 ‘내 인생의 소설’이라고 이 책을 평가했고 ‘그래도 우리의 나날’(문학동네)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평론가가 한 말을 따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평론가와 우리는 후일담으로 점철된 문학의 시대를 같이 걸었으니, 시대의 취향이었다고 일단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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