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살 딸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보인다며 영어유치원을 보내면 어떠나고 아내가 내게 살며시 물어본다. 영어유치원이라니...... 심리학자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나름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릴 때 섣부른 인지적 자극은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된다. 특히 아직 한글이라는 언어구조가 완벽히 형성되지 않았는데 영어라는 언어 자극은 언어발달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종일반은 유치원비도 부담되고 우리나라 유치원 누리과정이 꽤 괜찮으니 반대라고 했지만 마냥 안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올해 초 2살 쌍둥이까지 3명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 상황에서도 아내는 큰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 백화점 문화센터 원어민 영어수업을 들었다. 얼마 안 가서 수염이 많은 외국인 선생님이 무섭다고 그만두었지만 그 이후로 다온이는 그때 배운 영어를 자주 쓰며 영어 동영상을 틀어달라고 떼를 썼다. 그저 유튜브를 보고 싶어서 잔머리를 굴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계속 말한다. 5살이 뭘 안다고 영어를 배운다는 건지 어이가 없었지만 계속되는 아내와 딸의 요구에 일주일에 3번 영어유치원 방과후과정을 다니기로 하였다. 영어 유치원 2번째 날이었다.
"아빠 나 영어 공부해야 하니깐 조용히 해!"라고 말하며 유치원 영어교재를 꺼내더니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찼다. 5살 아이와 신나게 놀기만 했지 알려준 거라곤 숫자 세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한다고 조용히 하라니. 5분, 10분쯤 하다 말겠지 생각하며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다시 외친다.
"조용히 해! 공부하자냐." 그리고 시계를 보니 20여분이 훌쩍 지났다. 5살 집중력으로 스스로 20여분을 앉아 있다는 건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줄을 긋기도 하고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오늘 하루만 그렇겠지.
하루가 아니었다. 영어유치원을 가지 않는 날에도 유치원을 다녀오고 저녁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영어교재를 꺼내놓고는 공부를 한다. 그리고 물어본다.
"아빠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문제 하나를 풀어주려고 하면 자기가 할 거니깐 아빠는 조용히 하란다. 그리곤 알려준 방법이 아닌 자기 마음대로 낙서를 한다. 다시 알려주니 곧 잘 따라 한다. 이제는 매일 아침 영어유치원 먼저 가면 안 되냐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영어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가슴이 철렁한다. 이러다가 영어유치원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이젠 나도 아이 옆에서 같이 공부를 해야겠다. 저녁 먹고 30분 가족 모두 아참! 쌍둥이는 제외하고 나, 아내, 큰딸 모두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호기심을 가지고 몰입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잃어버린 나의 호기심을 떠올린다. 호기심이란 게 참 대단하다는 걸 딸아이를 통해서 느낀다. 나도 그랬었지. 호기심에 밤잠을 안 자고 무언가를 파고들었던 이전 나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고마워 다온아!
잃어버린 아빠의 호기심을 찾아줘서
그런데 아빠는 스스로 영어 공부하는 너의 모습도 좋지만
그냥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노는 너의 모습이 더 좋아!
영어유치원 종일반 보내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진짜 개구쟁이 다온이가 너무 사랑스럽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