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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Jun 06. 2021

mirage

환상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꿈만 같았는데 그녀가 없는 지금도 꿈만 같습니다.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이 환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만에 하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그녀에겐 추억을 회상할 때마다 내가 따라다니길 바랍니다.


 요즘 날씨가 자주 바뀝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니 또 어떤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날씨에 기분이 좌우되는 나약한 나날들이 계속되던 요즘, 맑은 날 저녁에 봤던 보름달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봤던 그 달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 카메라를 켰지만 초점도 잡히기 전에 다시 카메라를 껐습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이 예쁘게 떠있는 날이면 누군가에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담기만 하고 보내줄 사람이 없으면 찍는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순간 그 밤을 덮쳐오자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진으로 담고자 했던 달을 눈으로만 담고 있으니 차라리 그녀가 제 옆에서 같이 그 달을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 굳이 사진으로 찍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날 제가 봤던 그 달을 그녀도 봤으면 하는 날이었습니다.


 원래 생각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더 오래 걸립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했던 걸 말로 표현하다가 원래 설명하려 했던 생각들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게 바뀐 나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다시 그게 원래의 생각이 됩니다. 본질을 잃게 됩니다. 순수했던 마음이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걸까요.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모든 게 순수했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마음보다 말이 먼저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헤어진 날은 모든 게 계획적이었고, 그 무엇보다 말을 아끼며 표정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환상을 현실이라 착각했기 때문에 정말 현실적인 이별이 찾아왔을 때 모든 게 환상이라 느껴졌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날은 정확히 어떤 생각을 계획하고 말로 꺼냈는지 기억은 잘 안 납니다. 다만 하늘을 손으로 가리고, 눈을 감고, 별을 떠올리는 괴상한 짓을 하며 밤을 지새웠던 것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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