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나는 너를 기억하는 만큼 글을 쓰고 노래할게. 너는 내가 보이는 만큼 기억해줬으면 해.
내가 처음에 그녀를 보고 생각했던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땐 결코 첫인상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사람과 처음 겪은 일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과는 다르다. 아마 평소였으면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바로 시선을 내 발걸음으로 돌렸을 거다. 하지만 3초의 용기라고 했던가. 어디서 만났건 그녀에겐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발걸음을 밟아 먼저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 거다. 내 마음속에서 용기와 확신이 포개지면서 나도 몰랐던 내가 나온다. 그렇다고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기억나진 않는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기억을 데이터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후로 언제나 함께 했고, 나는 그녀의 모든 일상에 녹아들려고 했다.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향기가 물들어있었다. 그것은 브랜드 향수가 아닌 계절의 냄새라 언젠가 다시 돌아올 냄새라 착각을 일으켰다. 덧붙여서 그녀를 보고 생각했던 내 마음들이 기억에 남는다. 같이 걸었던 대로변 사거리보다 골목길에 만난 고양이가 기억에 남는다. 비 오는 날 걸었던 서교동보다 그녀가 입고 왔던 옷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만난 건 뜨거운 여름이었고 우리는 여름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뜨거운 계절보다 따듯한 봄에 만났더라면 뭐라도 달라졌을까.
서로 생각하는 미래는 다르다. 바람이 불면 그녀는 흩날리는 나뭇잎을 바라보았고 나는 떨어지고 밟힌 나뭇잎을 쳐다보았다. 비가 오면 그녀는 우산을 생각했고 나는 내일의 날씨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이 되면 첫눈을 같이 보고 싶어 했다.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더 이상 뜨거운 여름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고, 그녀는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길 바라진 않는다. 적어도 표현은 하고 싶었다.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있고 설령 우리가 잊혀지더라도 이 글과 음악을 다시 꺼냈을 때 생각 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만큼은 나와 같은 생각이길 바랬는데 그것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랑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