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편지
강인하다는 건 대체 뭘까요?
회복탄력성, 마음 근력이 좋은 걸 말하는 걸까요?
강인한 사람이 누구인가 가만히 떠올려봤을 때 유명한 분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이로운 사상을 전파하여 인간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한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었지요.
위인 또는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건 제 자신이 나약하다고 생각한 방증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곰곰이 제 생각을 들여다보니 ‘강함’ 중에 어릴 적 상처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자기 인생의 위인, 영웅이라고 정의하고 있더군요.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트라우마: 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라는 책과 동시에 다큐멘터리 <마운틴 퀸: 락파 셰르파>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떤 생각이 제 속에 머무를 때 필요한 정보가 제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 일이 잦아졌는데, 아마도 제가 원하는 걸 찾아내는 방식이 효율적으로 변한 거겠지요. 알고리듬처럼 말입니다.
제가 필요한 것이 동시에 주어지고 양질의 정보들이 제 머릿속에서 통합되고 흡수되는 과정에서 이해의 폭과 생각이 깊이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오직 저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제 기쁨을 조금이나마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트라우마>라는 책을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처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다양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케이스를 보는 게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폭력, 학대, 착취, 납치, 테러 등등.
문자를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 누가 감히 헤아릴 수나 있을까요?
책을 읽어 내려가며 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모두 같은 크기와 모양의 글씨인데 진하고 크게 강조표시를 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단어는 바로 ‘의지’였습니다.
트라우마를 차근히 극복하며 앞으로 나가가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 환자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을 때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오직 죽음만이 해결될 것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짧은 글에서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의지를 가지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내야만 했을까요?
또한 그 용기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요?
의지라는 단어가 그들의 결심과 노력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매우 작다고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용기와 의지를 가지도록 돕기 위해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녹아든 서술이 제 마음을 크게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트라우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고충과 환자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 동화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도 서술되어 있었지요.
정신과 의사로서 운동선수를 훈련하는 코치처럼 환자를 대한다는 말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다가 훌륭한 책의 연결점으로서 자기 자신을 코치처럼 대하며 위대한 자연에 맞섬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여성의 이야기 <마운틴 퀸>과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접하게 되었지요.
<마운틴 퀸>의 주인공은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과 이혼, 생활고를 극복하고 10번째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는 중년 여성입니다.
그녀의 기쁨은 산을 오르는 것이지요.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 말입니다.
그녀에게 에베레스트라는 산이 고통을 견디는 힘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에베레스트를 10번이나 등반하면서 버터낸 삶과 고통에 굴하지 않는 그녀의 위대함을 제 부족한 글로는 도저히 표현이 어려우나, 그녀야말로 가난과 가정 폭력에 노출된 모든 여성에게 용기를 주는 위대한 위인이자 진정한 영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삶이 고달픈 모두가 자신만의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또다시 오르고를 반복한다고 말입니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60세라는 나이를 극복하고 110마일의 바다 횡단이라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안 된다고 할 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달립니다.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코치이자 친구와의 틀어짐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릴 적 수영 코치가 가한 성폭력 트라우마의 그늘에 살고 있던 그녀는 쿠바부터 플로리다까지의 횡단으로 극복하고자 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꿈을 이루지요.
60세라는 나이는 저에게도 곧 찾아올 것이고 제가 만약 그 나이가 되어 다이애나나 락파 셰르파처럼 타인이 말하는 무모한 도전을 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영을 몇 년 동안 배워도 여전히 물이 무서운 제게 독을 품은 해파리와 해일에 맞서 맨몸으로 바다를 횡단한다거나, 집 앞의 작은 산을 오르는 것도 벅차하는 제게 에베레스트 등반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요.
세 분의 멋진 여성에게 책으로서 영상으로서 배운 건, 굴하지 않는 의지만 가진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걸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지요.
강인함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얻은 답 하나는,
강인함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고 남이 함부로 재단하거나 측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강인함을 가진 사람은 멀리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영웅은 주변에,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바로 당신을 비롯해 각자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두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리고 나이와 성별, 환경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무한한 바다를 수도 없이 횡단하셨을 나의 영웅,
당신께 경의를 표하며 이만 줄입니다.
- 당신처럼 강인한 여성이 되고픈 윰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