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집: 약자를 위한 건축
내가 친환경 건축설계 컨설팅 일을 시작해보니, 상업적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조직들에게 친환경 건축의 중요성에 대해 상기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그들을 대하다면 나까지도 이윤 only 마인드가 전염되는 것 같다. 친환경적 건물은 상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나조차 잊기 쉽다.
그러다 최근에 반 시게루(Shigeru Ban)라는 일본 건축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의 작품들을 보며 무척이나 감명받았다. 반 시게루는 지진 이재민들과 난민들을 위해 '종이로 만든 집'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그의 따뜻한 건축과 혁신적인 자재의 응용으로 2014년에 현대 건축가들 사이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탔다. 그가 추구하는 건축은 약자를 위한 건축이다.
반 시게루의 종이 건축은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 200만 명의 임시 거처를 종이로 만들었을 때 시작되었다. 1995년 그는 고베 대지진 이재민들을 위해 기초는 맥주 상자, 벽은 종이 튜브, 지붕은 텐트로 구성한 '종이로 만든 집'을 만들었다. 또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을 카드보드 대성당(Cardboard Cathedral)이라고 불리는 '종이 성당'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종이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고 재활용도 가능하며, 해체해서 언제든지 다시 조립할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 자재이다. 게다가 시멘트와 물을 사용하지 않아 건축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친환경 건물이기도 하다. '종이 기둥'은 튼튼하고 안전하며 방수와 방염 처리를 해서 내구성도 지녔다.
이후 VAN (Voluntary Architects Network)를 설립해 중국 쓰촨 성 대지진, 인도 구자라트 지진, 아이티 지진 등 이재민을 위한 이동식 주택을 종이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파리, 베를린 등 여러 도시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종이 파티션으로 구성된 임시 거처를 만들고 있다.
반 시게루는 인류애적이고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담긴 건축을 하게끔 많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자초한 '재해'라고 역설하는데,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건축가들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나는 건축가는 아니지만 그들에게 지속 가능한 설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서 건축물이 사회, 환경,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과, 이 산업의 일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반 시게루 홈페이지 http://www.shigerubanarchitec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