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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토마토 Feb 08. 2024

9주 만에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출시해 보자!

3D 스터디에서 시작된 카카오톡 이모티콘 '락스타의 길' 출시 도전기

첫 번째 블렌더 작업물

10월 17일. 시작은 3D 툴 공부였다. 업무를 하다 보니 3D 작업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어 가장 접하기 쉽고 활용도가 높다고 판단된 블렌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툴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사람 치고는 위의 사진처럼 사흘 만에 꽤나 그럴듯한 결과물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유료 강의를 들어도 자발적 관심이 생기지 않아 이후로는 진도가 전혀 나가질 않았다. 그래서 공부 방법을 바꿔, 블렌더를 활용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 + 실용적인 것 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동료로부터 이모티콘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아 2달 안에 카카오톡 이모티콘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나름 이모티콘에 대한 정의를 하고 이모티콘이 사용될 주요 상황을 좁혔다. 

나는 주로 친구와 격 없이 사용하는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기획하기로 했다.

- 이모티콘 : 상대와 대화할 때 감정의 극대화를 위해 사용하는 이미지 기반 표현수단
- 타깃 : 이모티콘 소비가 높은 10-20대
- 카톡 대화 상대 :
    사적인 관계 - 가족, 애인, 친구, 덕친, 동호회 등
    공적인 관계 - 직장, 학교, 학원 등


로봇처럼 감정중립적이면서도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지는 비주얼 컨셉을 고민했다.


첫 번째 이모티콘 콘셉트는 로봇이었다. 회사에서 AI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여러 스케치를 진행하며 비주얼 콘셉트를 잡아보았다.

- 의도적으로 뚝딱이는 AI
- 기본적으로 영혼 없이 웃는 무표정에 살짝 시니컬하고 뇌정지가 자주 옴
- 산세리프 폰트
- 귀엽고 불쾌한 골짜기
- 자세나 생긴 게 어딘가 각져있음
- 디폴트는 은은한 미소
- 뚜껑 따진 머리와 전선, 회로들
- 흰검 + 푸른 계열 색  


이걸 3D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되긴 했다.


대략적 비주얼 콘셉트를 잡고 나선 이모티콘 제목을 아이데이션 했다. 짧고 임팩트 있는 영혼리스를 AI의 답변 형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휴먼지능체
인간지능체
로봇이라니까요?
AI라니까요?
AI입니다만
에이~ 아입니다.
이 XX 사람 아냐?
이 새끼 사람 아냐?
미쳤습니다 휴먼
그래 보입니까 휴먼?
알겠습니까 휴먼?
인간아 뭐라고?
알겠다 휴먼
인공지능 풀가동
인간은 우리의 친구
내 친구는 AI
AI는 내 친구

내 친구는 AI(내가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 임티에 나를 대입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AI로 인식되었으므로...)로 마음이 기울어지자 이모티콘 목록을 한참 신나게 고민했다. 


50개 정도의 리스팅을 하다 리프레시가 필요해 잠시 낙서를 했는데 웬걸 이 쪽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모티콘 사용 타깃도 나만 쓸 것 같은 AI 콘셉트보다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폭이 넓다고 느꼈다.

리프레시 용도로 했던 낙서와 스케치에서 시작한 컨셉

주변에 밴드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차고 넘쳤고, 그들과 '나락도 락이다', '탈락도 락이다' 등의 밈은 이미 공기처럼 사용하고 있던 터였다. 주변에 이미 니즈가 넘치는데 리서치 결과 적당한 이모티콘 상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디벨롭하기로 했다.


'락'을 콘셉트로 제작된 이모티콘은 주로 햄스터같이 귀여운 10-20대 여성 타깃의 비주얼 콘셉트를 지녀 락을 좋아하는 남성들도 사용하기엔 거부감이 있었다. 또 말끝마다 '락'을 붙이는 밈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투박하고 대충 생긴 '락'을 비주얼 콘셉트로 하여 비어있는 타깃 영역을 노렸다.

국어사전에 '*락'을 입력하면 락으로 끝나는 모든 단어를 보여준다. 그중 일상적 활용례가 있을만한 단어를 추리고 추려 35개 정도 남긴 뒤 스케치를 진행했다. 생각보다 '락'으로 끝나는 단어 중 일상적인 게 없어 스케치를 보고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남은 32개를 걸러내기 위함이었다.


스케치가 끝나고 처음 만든 3D 락스타...

이모티콘은 나의 문장을 대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모티콘에 나를 대입한다. 

나를 투영해서 사용될 이모티콘의 비주얼 콘셉트는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한 번 쓰고 마는 것이 아닌 이모티콘의 특성상 너무 진지하지 않은, 즉 적당히 가볍고 부담 없는 모양새와 내용을 갖춰야 자주 활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 혹은 SNS등의 외부 채널을 통해 팬덤이 확보되지 않은 신규 IP로 비주얼을 기획한다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동시에 특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달에 5000개나 심사가 신청되는 이모티콘 무더기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모티콘 기획에 있어 9할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도 삽질을 하면서 블렌더에 대한 이해도가 금방 늘었다.

비주얼 기획은 나에게도 특히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는 소위 디자인하면 연상되는 미적인 디자인 영역을 다루지 않은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미적 감각이 애매하게 잔존해 있었다. 또 아무리 퇴근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머리를 싸매고 3D 툴을 만져봐도 툴 숙련도가 낮아서 원하는 형태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대충 그린 이모티콘이 유행한다는 것은 시장조사를 통해 파악한 상태였는데, 이런 애매한 미적감각과 툴 활용능력으로는 도저히 '의도한 대충 그린 느낌'을 낼 수가 없었다.

'락'이라는 모듈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모티콘이었기 때문에 메인 비주얼 에셋인 돌도 모듈의 특성을 살렸다. 비슷한 프레임 안에서 락으로 끝나는 단어에 맞춰 베리에이션을 줬다. 그래서 베리에이션을 주지 않은 디폴트 상태의 돌 에셋이 정말 중요했다. 결국 툴은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애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부분을 훈련할 수 있게 되어, 이모티콘의 완성에 집중하는 것으로 빠른 태세 전환을 했다.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넘어와 다양한 시도를 했다.

돌멩이 초안

우여곡절 끝에 일러스트레이터의 3D 기능 중 inflate를 활용해 돌의 디폴트 모듈을 만들었다. 3D가 주는 시인성을 위해선 모로 가도 3D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는 최대한 각을 많이 줘서라도 라운딩을 시도하고 있어 대충 만든 느낌이 덜하다.


굴림도 마음에 들었으나 이미지와 너무 분리되어 보였다.

32개의 이모티콘을 모두 디자인하고 폰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충 그린 톤 앤 매너에는 어떤 폰트가 어울릴까? 다양한 궁서체, 굴림체, 손글씨체를 시도해 봤다. 심지어 손글씨를 직접 써보기도 했다. 락에는 빨간색을 넣어 강조할지? 말풍선을 그려 다른 선적인 요소와 분리할지? 개성을 살리면서도 손바닥보다 작은 스크린에 띄워질 약 2*2센티미터 내 텍스트에 최대한의 심미성과 가시성을 확보하려는 치열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최종 안이 제작되었다.

최종 제출본
뼛속까지 Rock인 돌 Rockstar입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 중 '락'으로 끝나는 것을 선별해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밈인
'OO도 락이다'의 형식으로 풀어보았습니다.



12월 12일. 심사를 올렸다.

그리고 1월 9일. 약 한 달간의 기다림 끝에 이모티콘이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2월 6일. 또 다른 한 달간의 기다림 끝에 1차, 2차 이모티콘의 검수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다. 

오픈일만을 기다리며 이 이모티콘이 유저들 사이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될지 기대할 뿐.

락돌이의 스타의 길 이모티콘에 앞으로의 진척이 있다면 이곳에 업데이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음에 또 다른 콘셉트로 이모티콘 출시를 이어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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