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걸어가는 것
최근에 독립영화를 두 편이나 보았다.
<걸어도 걸어도> (고레다 히로카즈 , 2008)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홍상수, 2025)
독립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 때와는 늘 사뭇 다른 감상이 드는 것 같았다. 이번에 본 두 편의 영화는 배경의 큰 이동 없이, 한 가족의 일상을 아주 가까이서 조명한다는 점에서 마이크로, 리얼리티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두 편 모두 한 가족의 일상인데 거기에 평소와 다른 점은 가족이 된 사람들, 혹은 딸의 남자친구라는 손님이 찾아온 날이라는 설정이다. 독립영화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드라마틱한 장면은 크게 없다. 그렇기에 더욱 보통의(?) 관객인 우리가 익히 상상해 볼 수 있음 직한 장면들이, 그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실감 나게 전개되었다.
한 가족이라는 소수 인물들 간에 하루를 따라가자니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이런 거다.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구나. 어느 가족이나 드라마가 있구나. 그리고 누구나 일상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관계 안에서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며 살아가는구나. 우리의 삶은 화려하다기보다, 곁에 현실 하나하나를 잘 살아가는 장면,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구나.
어릴 적에는 어린 나를 제외한 가족 간에 갈등을 마주하면 왜 그러지- 하고 이해를 못 하기도 했다. 갈등을 외면하기도 했다. 누군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표현한 것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것이 진짜 비극이라기보다, 적어도 보이는 것보다는 고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겉을 신뢰하는 것보다 그 안에 늘 더 중요한, 진짜에 가까운 것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에는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현실을 잘 살아갈 수 있을 때 오히려 하루하루 충만한 기분이 든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느낀다.
최근 두 영화는 우연히(?) 이러한 우리 보통의 삶의 모습을 조명해 주었다. 다른 세계에 다녀오거나, 환상적인 서사를 열망하기보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우리 사실 그렇잖아요'를 조용히 짐작하고 응, 그렇지 라며 잔잔히 나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걸어도 걸어도>는 그 제목처럼, 뭐라고 할까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하루하루를 표현하는 제목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료타는 미망인이었던 새 아내, 그녀의 아들과 형의 기일을 맞아 고향 집을 찾는다.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을 포함해 온 가족이 모이는 날. 수년 전 형은 물속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었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된 만큼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료타 가족 가슴 깊이서는 그의 죽음을 흘려보내지 못했다. 이렇듯 가족이란 어떤 사건이 있든 지금의 구성원이 누구이든 간에 계속되는 관계였다. 더 중요하게는 삶은 계속된다는 점에서 <걸어도 걸어도>라는 제목을 붙인 게 아닐까.
<그 자연이>는 인물 간에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갈등이 연이어 그려진다. 그중 절에서 남자주인공-여자주인공 간에 '인생에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남자주인공 동화는 인생의 의미 같은 건 모르는 거라고 말하는 걸로 미루어 보아 허무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여자주인공 준희는 단정하지 말라며 그렇게 말하는 건 동화야말로 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며 억누르던(?) 감정을 작게나마 폭발시킨다.
사실 이 장면은 아아 양쪽 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정도로 넘어갈 뻔했는데, 같이 영화를 본 남자친구와의 대화가 장면을 이해하는데 깊이를 더해준 것 같다. 애초에 우리 삶에 절대적인 의미라는 게 없다는 건 당연한 말이다. 찾아 헤매지만 말이다. 동화는 해야 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건 없으니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건 삶에서 맞닥뜨린 그 중요한 질문을 옆으로 치워버리는 거다. 직면하기 두려우니 눈을 감아버리는 거다. 그게 쉬우니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비록 절대적인 선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세우고 만들며 살아가는 거다. 없다고 해서 추구하지 않는 것보다, 각자 추구하는 바를 세우고 노력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삶이 결국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난 이 말이 진하게 와닿았다.
한 가족의 하루를 가까이서 밀도 있게 담아낸 영화들. 그 안에서 인물마다 지닐 수 있는 어떤 감정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큰 가치판단 없이 담담히 그려낸 이 영화들에 여운이 깊다.
어른이 될수록 일상에서 하루, 하루와 가까워지는 느낌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현실이라는 장면들을 잘 살아낼 때에 비로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가까워지는 하루 안에 내 모습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포용할 줄도 알아야겠다. 외면하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이다. 왜냐하면 삶이란 결국은 하루를 살아냄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