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mind Jan 01. 2024

모든 삶은 흐른다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소용돌이치며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곧 잔잔하게 빛을 담아 환하게 빛나는 것. 우리의 삶도 그렇게 소란하게 흐른다.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들어왔다. 잠깐 열어둔 방충망을 통해 기습했다. 방안을 한 바퀴 빙 돌더니 꽃이 없는 걸 알고 다시 창문으로 날아간다. 윙윙, 커다란 유리창에 붙었다 날았다 방황하고 있다. 바로 아래 작은 창문이 열려있지만 닫혀 있는 커다란 유리창에만 집착한다. 바로 아래 작은 창문이 열려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한 채 헛된 시도를 반복했다.


 그 장면이 떠오른 것은 바쁜 일상에서 지쳐갈 무렵이었다. 출근 후 쌓여가는 공문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기한이 정해진 실적이 목을 조이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일을 겨우 시작했는데,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유리창에 부딪히던 벌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인생이란 항해도 숨 돌릴 기항지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책을 펼쳤다. 저자는 바다가 가장 삶을 닮았다고 이야기하며, 때로는 바다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러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책 속의 한 문장, "바다와 같이 살라"는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는 주변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느라 자신을 잃고 만다. 하루를 돌아보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참고 버티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책은 그런 나에게 자유를 선택하라고 했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떠다니는 걱정과 잡념에서 벗어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이다.


 책의 메시지를 품고 문득 밖으로 눈을 돌리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가랑비가 꽃잎을 다 떨구기 전에 길을 나서기로 했다. 내 마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남쪽 바다로 향하던 습관처럼, 이번에도 물결이 부르는 곳으로 발길이 닿았다. 광활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고,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마음의 파도도 함께 잔잔해졌다. 파도는 때로 거세게 나를 삼킬 듯하지만,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는다.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책은 바다를 통해 우리 삶의 항해를 이야기한다. 고난은 거센 파도처럼 다가오지만, 그 파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중요한 건 파도를 억지로 막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항해할 수 있으면 된다. 책은 용기 있는 선원, 고통을 견디는 닻, 슬픔을 막아주는 방파제와 같은 존재들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을 은유하며 위로를 전한다.


 시원한 바람이 드나드는 해변을 걸으며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바위틈에서 해삼을 줍고 조개를 모으던 순간들이 손에 닿을 듯했다. 해 질 녘의 바다는 노을로 물들고, 그 빛을 손에 쥐어보니 따뜻했다. 바다와 나의 하루가 이렇게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바다는 파도를 막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흘러갈 뿐이다.”


 책 속의 이 문장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었다. 바다도 늘 푸르지 않고, 때로는 거칠고 거대한 파도를 맞이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지나간다. 나 역시 내 의지로만 모든 것을 이끌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저 흐름에 맡기며 살아가다 보면, 지금의 고민도 먼 바다에서 바라본 섬처럼 작아질 것이다.


 파도 소리가 마음속에 잔잔히 퍼지던 밤, 나는 생각했다.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흔들림 속에서도 나만의 항해를 계속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인과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