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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Mar 05. 2022

노인과 바다

인간은 죽을지는 몰라도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흔히 바다에 비유한다. 수많은 실패 끝에 찾아오는 작은 성공,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망망대해에서 홀로 낚싯줄과 힘껏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닥쳐오는 파도에 무너지지 않고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낚을 수 있기를.


 “거대한 청새치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또 굉장히 존경한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기 전에 너를 죽이고 말 테다.” 청새치에게 무시무시한 사랑 고백을 하는 사람은 늙은 어부 산티아고다.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조각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아 살아가는 어부다. 가난한 산티아고의 인생에 최대의 행운이 찾아왔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80일이 넘었는데, 드디어 낚싯줄에 소식이 온 것이다. 물고기가 한 번씩 요동칠 때마다 노인의 몸도 따라서 고꾸라졌다. 사흘 밤낮에 걸친 사투 끝에 노인은 물고기를 잡게 된다. 거대한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드디어 마을로 자랑스럽게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행운도 잠시,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몰려오면서 승리의 이야기는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너무 허무한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하나도 남은 것 없이 빈손이 되었다면 결국 패배한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싶었을 것이다. 겨우 행운이 찾아와서 가장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상어 떼에 약탈당했다. 노인은 차라리 물고기를 낚지 않고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를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계속 변화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먼 길을 나설 때도 있고, 노력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뒤통수를 칠 때도 있다. 우리도 수많은 도전과 실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도전’과 ‘성공’이 같이 붙어 다니는 짝이라면 좋겠지만, ‘도전’은 ‘실패’와 더 친한 사이다. 나 역시 ‘행복’을 위한 선택을 했었지만, 결과에 대한 만족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더해졌다. 그때 조금 더 노력했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실패할 때마다 자신을 패배자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패배하기 위해 사는 셈이 된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누구 한 명이라도 인정해 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삶은 결코 실패가 아닐 것이다.


 노인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아내도 없고, 가족도 없다. 변변한 집칸조차 없이 초라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늙은 몸을 이끌고, 바다로 나서야만 했다. 사람들이 고기를 잡지 못한 운 없는 어부라고 노인을 무시할 때 유일한 벗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노인의 곁에서 고기잡이를 배우고 돕던 마놀린이라는 소년이다. 소년은 부모님의 종용으로 산티아고와 다른 배를 타고 있다.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가난한 노인이지만, 소년은 그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혜롭고 모든 생명에 깊은 애정을 가진 노인을 친구이자 스승으로 생각한다. 산티아고와 마놀린의 관계는 어떤 손익계산이나 이해타산이 개입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순수하고 신뢰에 바탕을 두는 관계들이 많이 사라졌다. 이기고 손해 보지 않는 것에 혈안이 되어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하는 도리가 많이 퇴색된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한 명이라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인정해 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삶을 실패라 할 수 있을까. 나이를 초월한 산티아고와 마놀린의 우정은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허옇게 드러난 청새치의 뼈와 여윈 노인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에서는 비슷한 아픔이 느껴진다. 모두 파멸과 패배의 시간을 견뎌낸 상흔이다. 이 상처에서 허무가 아니라, 그 속에 빛나는 가치를 읽어 내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와 세상을 존중하는 길이라고 책은 말한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잠든 노인 곁에서 상처로 얼룩진 그의 텅 빈 손을 어루만지며 엉엉 우는 마놀린의 모습이 나온다. 소년은 아마 빈손의 비밀을 엿본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 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사람들은 곧잘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곤 한다. 작은 조각배와 그 위에 타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사회는 점점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새로움을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이고, 습득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가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산티아고는 이제 늙어서 힘도 없고 운도 없다. 하지만 누구도 가지지 못한 의지와 용기를 가졌다. 비록 고기를 상어에게 몽땅 잃었을지라도 스스로 겪은 일에 대하여 회한은 없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까. 자신의 패배가 진정한 패배가 아님을 알며, 후회도 슬픔도 없이 끝내 얻게 된 안식에 감사한다.

     

 바다에서 청새치를 만난 황홀한 기쁨과 상어 떼 같은 시련이 때때로 우리 삶을 흔들 때가 있다. “인간은 죽을지는 몰라도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은 바다와 같은 인생을 어떻게 항해해야 할지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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