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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Jan 01. 2024

모든 삶은 흐른다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소용돌이치며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곧 잔잔하게 빛을 담아 환하게 빛나는 것. 우리의 삶도 그렇게 소란하게 흐른다.” 책은 우리의 삶을 바다에 비유하며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들어왔다. 잠깐 열어둔 방충망을 통해 기습했다. 방안을 한 바퀴 빙 돌더니 꽃이 없는 걸 알고 다시 창문으로 날아간다. 윙윙, 커다란 유리창에 붙었다 날았다 방황하고 있다. 바로 아래 작은 창문이 열려있지만 닫혀 있는 커다란 유리창에만 집착한다. 출근하고 쌓여가는 공문에 정신없이 한 주를 흘려보낸다. 기한이 정해진 실적은 내 목을 옥죈다. 어떤 일을 시작했지만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유리창에 집착하는 벌과 무엇이 다를까. 

    

 인생이란 항해도 숨 돌릴 기항지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책을 펼쳤다.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바다라는 신성함을 철학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바다가 가장 삶을 닮았다고 말하며, 때론 바다와 거리를 두고 삶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바다와 같이 살라”는 책의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든다. 


 우리는 주변에서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하루를 돌아보면 쳇바퀴 같은 일상이 이어지면서 무언가에 갇힌 기분이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순응하거나 그냥 참고 지루한 일상에 몸을 맡길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나에게 책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모든 순간을 흘러가는 대로 두고, 그 속에서 삶이 주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는 선장이 되라는 것이다.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 머릿속에서 종일 떠드는 쓸데없는 잡념과 걱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라고 이야기한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니, 어느새 계절도 지나가고 있었다. 가랑비가 꽃잎을 다 떨구기 전에 길을 나서기로 했다. 젖은 솜처럼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은 몸이 남쪽 땅으로 기운다. 넉넉한 바다에 안겨 쉬고 싶다는 열망이 등을 떠미는 것이다. 물기 어린 바람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광활한 풍경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밀려왔다 쓸려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나빠졌다 나아지는 내 기분을 보는 듯하다. 고개를 쳐든 파도가 때론 나를 집어삼키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다 괜찮아지고 잔잔해진다. 파도처럼 들쭉날쭉한 내 마음에도 조금씩 하얀 실뿌리가 내리고 있다.

      

 때때로 삶이 몰아치듯 떠밀려 와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고난과 역경이 있는 만큼 환희와 기쁨이 있고, 단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책은 용기 있는 선원들과 우리 삶을 밝게 비춰주는 등대, 고통이라는 바람에 휘청이지 않는 닻, 거센 파도처럼 다가오는 슬픔을 막아주는 방파제와 같이 우리를 지켜줄 존재들을 은유하며 위로한다.

     

 선선한 바람이 드나들어 맨발로 걷기에 좋은 날이다. 시원한 파도가 발을 간지럽힌다. 어린 시절, 바위틈에서 해삼을 줍고, 조개도 팠던 담묵빛 추억이 손에 닿을 듯 아물거렸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솔향이 확 밀려든다. 솔숲 너머로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해풍에 색이 바랜 간판이 쓸쓸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골목대장 검둥개가 적막을 깨뜨린다. 해가 저물었지만, 발그레한 표정을 숨길 수 없다. 바다를 노르스름하게 비추는 빛을 손에 담아 쥐었다. 따스하다.

          

 “바다는 파도가 오지 않도록 억지로 막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그냥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파도의 주인이 아니어도 당당히 항해할 수 있다.”

     

 책은 삶을 바다에 비유하며, 바다와 같은 인생을 어떻게 항해해야 할지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푸른빛이 당연한 바다도 빛깔이 다른 날이 있고 파도가 높은 날도, 잔잔한 날도 있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론 거대한 파도와 같은 시련이 우리 삶을 흔들 때도 있지만 결국 지나가 보면 다 괜찮아진다. 삶은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흘러가며 살아지는 것이다.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내 고민 같은 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온기가 남은 해변가에 달빛이 한 줄기씩 찾아든다. 시원한 파도 소리가 마음속 깊숙이 울려 번진다. 성나서 날뛰던 마음도 잔잔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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