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mind Jun 13. 2023

습기

식빵은 빠삭하게

  아내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요즘 들어서 나도 가르친는 느낌을 받는다.


  주말이라 간단히 토스트를 만들어 먹으려고 준비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버터를 프라이팬에 녹이고 식빵을 구웠다. 빵을 태울까 봐 약불에 신경을 써가며 천천히 굽는다. 노릇노릇해진 식빵을 접시 위에 살포시 얹는다. 엊그제 구입한 블루베리 잼을 바르고 우유를 데웠다. 오, 완벽하다. 내심 뿌듯해하고 있던 찰나다.


"오빠, 과학 시간에 졸았어?"

"빵을 이렇게 두면 어떡해. 습기가 차서 빵이 눅눅해졌잖아."


  나는 눅눅한 빵도 맛있다. 시리얼도 눅눅하게 먹는 거 좋아한다는 말이 목구멍 턱 걸렸다. 아내는 말없이 접시에 놓인 식빵을 다시 가져가 프라이팬에 데운다. 칭찬받으려는 생각은 안 했. 그래도 '내가 자기 몫까지 구웠는데 괜한 심술을 부리니 괘씸하다' 한마디 날리려다 되맞는다.


"오빠. 빵을 굽고 난 다음에 바로 접시에 엎어두는데 습기가 안 차?"

"구운 식빵을 접시에 걸쳐놓아야 빠삭함이 유지되지."

"잼을 미리 발라두면 눅눅해진다고 생각 안 해?"

"일상생활의 모든 게 과학이야."


  방언처럼 터져 나오는 잔소리가 나의 한쪽 귀를 통과한다. 그렇게 나는 부처가 된다.  구워진 식빵이 다시 접시 위로 올라간다. 습기와 더불어 내 정신도 가출했다. 빠삭한 식빵 대신 내 안구에 습기가 찬다.


오빠.


뭐 또?


아내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나는 그렇게 또 아이가 되고 만다.










식빵

바싹 구워 부풀었다

느슨해진 인연

빠삭하면 멀어질까

습하면 그리울까








매거진의 이전글 잘 넘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