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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욘 Oct 13. 2020

아빠와 낚시

아빠와 나는 도두항으로 향했다. 항 입구에 있는 낚시가게에서 초보자용 낚싯대와 떡밥을 사고 방파제로 이동했다.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 어슬렁 거릴 때, 저 멀리 검은 돌고래 떼가 무리 지어 지나갔다. 돌고래 떼는 쉬지 않고 수면 위로 반원을 그리며 뛰어올랐다. 돈 주고도 쉽게 못 보는 광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볼 수 있다니, 시작이 좋았다.


아빠가 정년퇴직하고 난 뒤 부모님은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제주도에 자그마한 식당을 차렸다. 추석 연휴를 맞아 두 달 만에 방문했다. 혼자 지낼 때는 아침은 절대 먹지 않지만 제주도에 오면 매일 엄마가 고봉으로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는다. 엄마는 삼시 세끼 중 한 끼라도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앞으로 엄마 밥을 몇 번이나 먹을 수 있을까 세어 보며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빠와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한답시고 늘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대학생 때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 집에선 잠만 자고 나가기 일쑤였다. 여느 집 딸처럼 살갑게 대하지도 못했다. 기껏 하는 얘기라고는 우리 집 강아지 푸딩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잘 먹지도 않는 아침을 거하게 먹고 뜬금없이 아빠에게 가게 문 열기 전에 낚시나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낚시는 아빠의 오랜 취미 중 하나인데, 어릴 적 가족 모두 저수지 낚시를 가면 나는 하루 종일 언제 집에 가냐고 보채기만 했었다. 아빠는 웬일인가 싶으면서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아빠랑 둘이 외출하는 건 스물두 살 때 아빠가 보고 싶다던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애슐리에서 어색하게 밥을 먹은 뒤로 대략 8년 만이었다.


진즉부터 와서 고기를 낚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도 슬쩍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바늘에 미끼를 끼우는 법, 낚싯대를 던지는 법, 낚싯대를 건지는 타이밍, 낚은 물고기를 바늘에서 빼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두 번이나 낚싯대를 돌부리에 걸리게 하고, 기껏 잡은 물고기를 바늘에서 빼다가 여러 번 놓쳐버렸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화내거나 답답해하는 기색 없이 "이리 줘. 아빠가 해줄게." 라며 몇 번이고 다시 알려주었다.


수차례 물고기들에게 미끼를 삥 뜯긴 후에, 마침내 나는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 적절한 타이밍을 알아냈다. 동물의 숲 게임 속에서 고기를 잡을 때 느끼던 그 인위적인 진동이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느꼈다. 한참 고기와 씨름하던 도중 바다 한가운데서 검은 머리통 하나가 쑤욱하고 올라왔다. '해녀가 여기까지 오시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빠가 "저거 봐라. 거북이다."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정말 큰 바다거북이였다. 돌고래 떼에 이어 바다거북이라니, 제주도는 누군가의 거대한 동물의 숲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나가던 아재 한분이 "뭐 많이 낚았어요?"라고 제주 억양으로 물었다. 아빠는 "전부 깍재기죠, 뭐."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재는 "저 옆에는 참돔 하나 낚았대요."라고 말하며, 우리가 잡은 고기에는 눈길도 안 주고 쿨하게 사라지셨다.


"깍재기가 뭐야?”내가 물었다. "네가 계속 낚은 거.” 아빠가 말했다. 검색해보니 깍재기는 전갱이의 제주 사투리라 한다. 계속 전갱이만 나오는 걸 보니 제주도는 역시 동물의 숲이 맞다고 생각했다.


옆 아저씨가 참돔을 잡았다는 소식에 열심히 낚싯대를 던졌으나, 올라오는 건 죄 깍재기뿐이었다. 깍재기 몇 마리와 이름 모를 잔챙이 몇 마리, 자리돔 하나를 낚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돔은커녕 잔챙이 몇 마리 낚은 게 전부이지만, 처음 해본 낚시는 기대보다 재미있었다. 미끼를 던지고, 입질을 기다리고, 낚아 올리고, 다시 던지고, 기다리고, 낚아 올릴 때 손맛은 게임보다 짜릿했다. 아빠와 내가 나눈 얘기라고는 "에잇, 미끼만 물고 튀었네.", "그라체!", "떼잉, 또 깍재기네."가 전부였지만 몇 년간의 공백이 조금은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아마 다음 방문에도, 다다음 방문에도 나는 낚시를 하자 조를 테고 아빠는 또 내심 반기며 어색하게 따라나설 것이다.  

자리돔
이름 모를 고기. 작아서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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