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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욘 Feb 13. 2021

삶의 노이즈 캔슬링

그래서 뭐, 그런 거지 뭐, 오히려 좋죠?

늘 불안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걱정했다. 나를 향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평가가 무서웠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 볼 수도 있고, 자의식 과잉이라 볼 수도 있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분명한 건 내 생각의 중심, 판단의 기준은 항상 타인에 있었고 나는 늘 불안했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털어놓은 어느 날, 한참을 들어주던 담당 선생님은 마침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뭐라고 얘기할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냥 흘려들어버리세요. 그 사람들이 김수연 씨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따뜻한 표정으로 냉소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았달까. 흔하게 듣던 조언인데, '누가 그걸 몰라서 못하냐'며 반발하곤 했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조언을 하려면 전문 자격증 정도는 있어야 하나보다.


까짓 거 한낱 소음에 불과하다고, 백색소음 정도로 치부하기로 했음에도 소음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하루키의 '그런 거지 뭐'와 '그래서 뭐'를 되뇌며 무심히 흘려보내 본다.


'그런 거지 뭐, 그래서 뭐, 이 두 가지는 인생의 (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의) 양대 키워드이다. 경험으로 말하는데, 이 두 가지만 머리에 잘 새기고 있으면 인생의 시련 대부분을 큰 탈 없이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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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런 사고방식에 기초해서 살면 마음은 편할 수 있어도 인간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사회적 책임감이나 리더십 같은 것과도 완전히 연이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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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에 적정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추가된 '오히려 좋아'까지 세트로 주문처럼 외치면, 소음이 넘치던 이 세상은 에어팟 프로를 낀 것처럼 고요해진다.


'오히려 좋아'는 내가 좋아하는 전 웹툰 작가 이말년, 현 스트리머 침착맨이 일종의 정신승리를 하며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다. 이를 테면 차가운 버거를 먹으며 '버거를 먹는데 냉면의 기분을 느낄 수 있네? 오히려 좋아'라는 식이다. 누가 봐도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억지로 이유를 붙여가며 좋다고 하는 게 재밌어서 따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 붙어버렸다.


말이란 참 신기하게도, 반복하다 보면 현실이 된다. 누군가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그렇게 하지 말고 요렇게 했어야지.'라며 훈장질을 해도 "아니? 오히려 좋아."라며 가뿐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시작한 말이지만 정말로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좋은 점을 찾아내어 오히려 좋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잊지 말고 자체 노이즈 캔슬링을 해야겠다.


"그래서 뭐, 그런 거지 뭐, 오히려 좋죠?"


고즈넉한 서귀다원

+)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덕분에 충분히 쉬고, 이직했다. 오히려 좋죠?

노이즈 캔슬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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