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은 아니지만 좌석은 모두 차있었다. 어디선가 '타닥, 타닥' 둔탁한 물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손에 든 흰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걸어오는 소리였다. 지하철에 있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장작 타는 소리처럼 규칙적인 리듬으로 타닥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다시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버렸다.
고3 때, 지망하는 대학교의 논술 시험 날이었다. 지난 입시설명회 때,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들이 오는 탓에 차가 많이 막히고 주차할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와 나는 지하철을 타고 캠퍼스가 아름다운 그 대학교로 향했다.
요즘엔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팔거나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마주쳤다. '한쪽 다리를 잃고 매일 같은 장소에서 구걸행위를 하는 사람이 저녁이 되면 멀쩡하게 일어나 벤츠를 타고 돌아가더라.' 라던지, '사실은 범죄조직에 연루된 거라더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 평소에는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봐도 고개를 돌리곤 했다.
의심해 마지않던 다른 구걸인들과 다르게 그 남자는 '진짜'처럼 보여서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남자에게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겼다. 아마도 눈앞으로 닥친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뇌를 환기시키고 싶었던 탓도 있었을 테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동 시간에 보려고 바리바리 준비해 간 각종 프린트물은 이미 무용해진 지 오래였다.
마침 주머니에 있던 천 원짜리 두장을 꺼내 남자가 내 자리까지 오길 기다렸다. 그러다 막상 남자가 눈앞에 다가왔을 땐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꺼내 든 2천 원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지켜보던 엄마는 남자가 다른 칸으로 떠나기 전에 얼른 주고 오라며 옆구리를 찌르며 "좋은 일 하면 다 돌아오는 거야." 말했다.
'내 알량한 동정심으로 한두 푼 건네는 것이 과연 저 사람에게 좋은 일일까?'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엄마의 말에 용기를 내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내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계속 지팡이로 그의 걸음에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하며 '타닥, 타닥' 걸어갔다. 나는 말없이 동전 몇 개 들어있는 그의 작은 바구니에 천 원짜리 두장을 넣었다. 그는 그제야 흠칫 놀라며 나의 존재를 눈치챘다.
남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내 방향으로 목례를 했다. 나도 덩달아 "어어, 네"라고 말을 더듬으며 목례를 했다. 그 순간 남자가 내 팔목을 잡았다. '뭐야. 안 보이는 거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쳤다. 그는 꽤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학생이에요?"라고 물었다. 지하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고 동시에 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학생. 잘 될 거예요. 다 잘 될 거야. 내가 기도해줄게."라고 말했다.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또 "아아, 네"라고 소심하게 답했다. 그는 내 팔을 놓아주고 다시 지팡이로 바닥을 쓸며 나아가다 옆칸으로 이동했다.
기묘한 기분으로 학교에 도착해 세 시간이 넘는 논술 시험을 마쳤다. 이 짓을 다시는 못할 것 같으니 제발 이번 한 번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다 잘 될 거라 했으니, 왠지 정말로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달 뒤, 캠퍼스가 아름다운 대학교에 합격했다. 논술 성적이 좋아 내신과 수능도 필요가 없게 되어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이 백수 생활을 즐겼다. 남자의 2천 원어치 기도가 꽤 효험이 좋았나 보다. 종교는 없지만, 마음은 전달된다고 믿는다. 어떤 기대와 어떤 마음은 때때로 너무 많이 담겨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남자의 2천 원어치 기도는 너무 비어있지도, 너무 가득 차 있지도 않은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응원이 되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시험 보는 날이면 귓가에 '타닥, 타닥' 지팡이 짚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