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편은 아니지만, 결혼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안정적인 분위기가 부러울 때가 있다. 서로를 향한 믿음에서 나오는 그 차분한 분위기 말이다.
나는 언제나 불안했고 불안할수록 안정에 집착했다. 실패하지 않는 안전한 길만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보단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회사보단 뽑아줄 것 같은 회사에 지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에 집착할수록 나는 더 불안해졌다.
작년 이맘때쯤 그 불안함이 극에 달했을 때,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 또는 이주일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에게 묵혀있던 감정을 토해낼 때마다 내 삶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마음은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나에게 주변에 지금처럼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6년 넘게 만난 남자 친구에게도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많이 외로우실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그날 남은 상담 시간 동안은 내내 울기만 했다.
내 불안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고 믿었다. 대학을 가지 못할까 봐, 취업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지만 대학을 가도, 취업을 해도 불안했다. 내게 필요한 건 대학 합격, 대기업 입사 같은 사회적, 경제적 안정이 아니라 감정적 지지, 정서적 안정이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 세상에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라고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 나를 나로서 이해해주는 영혼의 동반자가,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줄 구원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 결혼으로 그런 사람을 잡아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이해 안 되는 내 마음을, 불안을 보듬어주고 지지해주고 감싸주고 언제나 내 편인 작은 울타리가 되어 내게 안정을 준다면 결혼 그까짓 거 백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진 결혼도 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다.
근데 있을까, 그런 사람. 없겠지? 아니야, 있을지도 모르지. 이미 만났지만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몰라. 지금의 나라면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나를 100%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내가 나를 믿어주면, 내가 나를 보듬어줄 수 있으면, 내가 내 편이 되어주면, 그땐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나는 결혼 같은 건 하지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