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욘 Sep 20. 2021

나의 작은 울타리

결혼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편은 아니지만, 결혼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안정적인 분위기가 부러울 때가 있다. 서로를 향한 믿음에서 나오는 그 차분한 분위기 말이다.


나는 언제나 불안했고 불안할수록 안정에 집착했다. 실패하지 않는 안전한 길만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보단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회사보단 뽑아줄 것 같은 회사에 지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에 집착할수록 나는 더 불안해졌다.


작년 이맘때쯤 그 불안함이 극에 달했을 때,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 또는 이주일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에게 묵혀있던 감정을 토해낼 때마다 내 삶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마음은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나에게 주변에 지금처럼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6년 넘게 만난 남자 친구에게도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많이 외로우실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그날 남은 상담 시간 동안은 내내 울기만 했다.


내 불안의 원인은 외부에 있다고 믿었다. 대학을 가지 못할까 봐, 취업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지만 대학을 가도, 취업을 해도 불안했다. 내게 필요한 건 대학 합격, 대기업 입사 같은 사회적, 경제적 안정이 아니라 감정적 지지, 정서적 안정이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 세상에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라고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하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에 나를 나로서 이해해주는 영혼의 동반자가,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줄 구원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 결혼으로 그런 사람을 잡아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조차도 이해 안 되는 내 마음을, 불안을 보듬어주고 지지해주고 감싸주고 언제나 내 편인 작은 울타리가 되어 내게 안정을 준다면 결혼 그까짓 거 백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진 결혼도 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다.


근데 있을까, 그런 사람. 없겠지? 아니야, 있을지도 모르지. 이미 만났지만 나만 모르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몰라. 지금의 나라면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나를 100%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내가 나를 믿어주면, 내가 나를 보듬어줄 수 있으면, 내가 내 편이 되어주면, 그땐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나는 결혼 같은 건 하지 못할 거야.

작가의 이전글 2천 원 어치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