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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Toolkit 이론과 문화 개념

인지사회학 독서노트 (1) 

이 글은 대학원 수업 〈인지사회학 세미나〉시간에 읽은 자료 중 흥미로웠던 글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소고를 적은 것이다. Swidler의 논문은 '문화'를 규정하는 고전 사회학적 관점을 비판하고, 문화를 하나의 행위 자원의 묶음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이해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20세기 미국사회학에서 유행했던 민속학방법론(일상생활방법론)과 상당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독서자료: Swidler, Ann. 1986. "Culture in Action: Symbols and Strategies" American Sociology Review 51(2): 273-286.


1. Swidler 논문의 목적

the Reigning Model 비판과 문화연구의 대안적인 사회학의 관점을 개발하는 것. The reigning model이란 개인행위를 설명할 때 문화가 행위에 선행하고, 가치가 문화를 규정한다는 논리이며, Swidler는 ‘가치-문화-행위’라는 전통적인 접근방식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2. Swidler의 비판 대상: 

A. 가치→행위 이론: Weber 행위이론과 그 조야한 판본인 Talcott Parsons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이론적 가정. Parsons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Weber의 가치→행위 이론을 특유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지만, 베버식의 설명적 논리는 파슨스에 이르면 쇠퇴한다. Parsons는 Weber의 ‘구체적(특수)’이고 ‘역사적 설명’을 보편적이고 탈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Parsons에게 social system은 보편적이고 역사초월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그의 이론에서 행위자의 선택은 종래의 문화적 전통 안에서 제약을 받기 때문에 매우 제한된다. 

        “가치→행위” 인과적 설명은 일면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반증사례로서 특정한 집단에서 빈곤이 지속되는 이유를 들 수 있다. 빈곤의 문화(The Culture of Poverty) 연구에서 쟁점은 빈곤이 지속되는 이유로 빈곤층 남성들이 안정된 가족관계나 번듯한 직업에 대한 열망(가치추구)이 없거나 중간계층 및 노동계층 남성들보다 열망이 덜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는데, 그러한 가설은 서베이 자료 분석을 계층집단별 열망의 수준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발견되면서 폐기되었다. 


B. 더불어 개인 행위를 개인적 가치추구로 설명하려는 개인주의 설명틀 역시 명확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데, 칼뱅교나 예정설을 믿지 않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교적 에토스(금욕적인 직업의식?)가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가치지향이 사라진 오늘날에 그러한 행위가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문화를 ‘가치’로 이해하는 베버식의 설명논리는 한계가 있다. 


3. Toolkit 이론의 전제

A. Swidler는 위와 같은 이유에서 행위를 설명하는데 ‘가치’의 인과적 역할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문화’를 일관된 방향으로 행위를 구조화하는 통일된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을 거부하고, 그것보다 훨씬 유연한 관점, 즉 문화를 tool kit 또는 repertorie로 보는 관점을 채택한다. 후자의 관점은 특정한 상황에서 행위자의 해석과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그러한 단위 행동들이 집합하여 일련의 레퍼토리를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Parsons류의 문화이론이 행위자를 ‘문화적 멍청이(cultural dopes)’로 이해한다는 비판적 관점을 보유한 민속학방법론자(일상생활방법론자)들도 공유한다.


B. Toolkit 이론은 행위의 인과적 선행조건으로서 개인의 관심이나 가치지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Swidler는 행위의 인과적 선행조건으로서 ‘가치추구’에 주목한 Weber의 설명적연구가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의 비교분석을 통해 내놓은 예측이 경험적으로 실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구조론적인 시각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4. Toolkit 이론의 내용: 문화적 영향에 관한 두 가지 모델

Swidler는 문화가 작동하는 두 가지 구별되는 상황이 있고,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때, 상황은 ‘정태적 관점’과 ‘동태적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Swidler는 아래와 같이 settled와 unsettled로 구별하며, 각 상황에서 문화가 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각기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 Unsettled Lives: 사회변동의 시기에 문화가 행위에 미치는 영향. 설명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이데올로기 vs 전통(tradition) 및 상식(common sense)이다

이데올로기: 통일되고 명확하며, 자의식적인 의식 및 신념 체계. 

전통과 상식: 전통은 다양하고 부분적으로 포용하며(비교적 유연), 무의식적인 문화적 믿음과 관습 따위. 사람들의 의식속에서 전통은 ‘자연스러운 사물의 질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상식은 자각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매우 자연스럽고 명료해 보이며 부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가정들이다.

Unsettled lives의 국면에서 이데올로기적인 행동주의(activism)은 복수 이상의 이데올로기가 경합사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공식화하기 위해서 그 담지자들은 구체적인 행위를 한다. 이 때 행동은 기성의 행위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행위양식 다발들이 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분히 ‘의식적’이다. (cf. Michael Walzer가 설명한 칼뱅교의 자기통제적 윤리의 출현 기원)


B. Settled Lives: 지배적 문화가 존재하는 시기에는 문화의 자원이 다양하며, 개인과 집단은 그러한 문화의 자원들을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문화와 행위가 다소 느슨하게 연결된다. 정형화된 행위양식이 존재하는 unsettled lives의 국면보다는 훨씬 다양한 규범과 행위 규칙 등이 허용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행위전략의 묶음을 toolkit이라고 Swidler는 설명한다. 


5. 연구적 함의: 세 가지

A. 가치나 선호에 관련되지 않은 행위들을 설명할 수 있음.

B. 문화적 도구로서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음: 특정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특정한 행동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매개변수로서 가치. ‘가치→문화→행위’의 도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베버주의적 행위이론과 구별된다. (ex. 청년여성들의 직업가치와 가족가치) 즉, 변수간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

C. 문화자원의 전용(reappropriation) 전략을 이해할 수 있음: 문화적 자원과 행위전략을 구별하여 사유할 수 있음. 사람들의 행위전략은 상황과 맥락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떤 문화적 자원이 특정한 형태와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음 (19세기 프랑스 장인들의 급진적 사회주의 운동전략에 관한 Sewell의 연구)



[독서노트]

분명, toolkit이론은 새롭고 흥미로운 지점들이 상당 있다. 예컨대 다음의 점에서 toolkit이론의 장점이 드러난다.

(1) toolkit 이론은 개인의 행위의 인과적 조건으로서 자아를 가정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toolkit이론에서 개인이 특수한 문화적 각본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개인 앞에 주어지는 행위 전략과 자원들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른 레퍼토리를 선택할 수 있다. 이점에서 toolkit 이론은 까다로운 연구주제로서 '자아'를 피해간다. 

        그러나 동시에 ‘자아’가 없기 때문에 빈번하게 관찰되는 행위들을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설명틀이 없어진다. 예컨대, 개인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단순히 우연적인 일일까? 한편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이론과 같은 Practice theory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에서 말하는 “embodied” 개념(예. 도덕적 직관)은 개인들에게 모든 레퍼토리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행위전략과 레퍼토리의 묶음이 계급집단별로 다르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러나 Swidler는 적어도 이 글에서는 개인이 사용하는 행위전략과 레퍼토리가 상황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다고 봄으로써 이 문제를 '우연성'과 '주관성'의 문제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Swidler의 생각이 이후에 달라지거나 또는 구체화 되었는지는 다른 학자들과의 논쟁, 그리고 그에 대한 Swidler의 반박을 검토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2) Swidler의 이론에서 갑툭튀로 느껴지는 개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데올로기'이다. 그는 문화가 개인의 전략적 행위를 위한 자원묶음이라고 느슨하게 규정해놓고선, 이데올로기 개념만큼은 통일된 가치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데올로기에 관한 설명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개인들의 가치추구와 행위 사이에는 베버적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고전적인 이데올로기 개념규정 방식과는 다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대관절 이데올로기 개념은 Swidler의 문화규정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그의 toolkit이론과 이데올로기 개념은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이 글은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읽었던 독서자료들에 대한 메모를 얼기설기 엮은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공개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때문인데, 우선 내가 컴퓨터 하드에 넣어놓은 글들을 자주 꺼내어 보지 않기 때문이다. C. 라이트 밀즈의 조언에 따라 하나의 자료철을 이곳에 만들어보고자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인터넷이라는 바다 속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연구자 또는 전문가와의 조우 때문이다. 그 조우가 언제나 반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생산적인 논평이나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어설픈 메모들을 이렇게 공개한다. 그럼에도, 이 글은 습작에 불과하니 인용이나 다른 플랫폼에서의 비난은 삼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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