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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건축가 Jan 27. 2024

독일 초등학교 첫 학부모 상담

엄마, 놀라지 마. 나 수업시간에 떠들어.

오늘 아침 여덟 시 전까지, 네 군데에 연락을 해야 했다. 민이 유치원. 오늘도 못 가, 다음 주에 보자. 율이 학교. 교장선생님, 율이가 미열이 있고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집에 있겠습니다. 율이 등원 그룹. 크리스티나, 오늘 율이 학교에 안가, 내일 아침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 회사 와츠앱 그룹. 우리 집에 아픈 아이가 두 배가 돼서 오늘은 아이 병가를 낼게.


지난주 목요일, 회사에서 유치원으로 불려 가 열 나는 민이를 픽업한 이후로 일주일을 꼬박 아팠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은 하율이와 나까지 몸이 좋지 않다.


다행히 아프기 전인 어제, 하율이의 첫 초등학교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언제 부르나 기다렸지만, 당일이 되자 긴장됐다. 남편도 같이 가고 싶어 했으나 집에서 아픈 아이를 돌보기로. 대신 질문 세 개를 적어줬다. 이 질문들은 꼭 남편의 질문이라고 하고 물어봐 달라고. 아이에게 관심 많은 아빠처럼 보이고 싶은가 보다. 율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나 보다.


교실 문 앞에서 질문의 순서를 정하고, 독일어로 잘 모르는 단어들을 검색했다. 시간이 되자 교실 문이 열리고 앞 순서의 엄마가 나왔다. 바톤터치하듯 들어가 아이들 책상에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자, 남편에게서 받은 숙제부터 먼저 하고. 마침 둘째가 아파서 여기 오고 싶었던 남편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아픈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율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율이는 학기 초에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유치원에서 율이 포함 단 두 명만 이 학교로 진학을 했고, 다른 한 명은 별로 친하지 않은 남자아이다. 두루두루 친구를 사귀긴 한 것 같았지만, 베프가 없어서 종종 하루종일 혼자 있는 날이 있나 보더라. 그래도 괜찮았다, 운동장을 산책하며 재미있는 걸 찾았다, 혼자 앉아있던 다른 친구랑 같이 얘기했다 등. 나름 방법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금요일밤 저녁 난데없이 문제가 터졌다. 남편이 저녁약속이 있어 퇴근하고 바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율이가 통제 불능의 울음을 터트렸다. 요는, 아빠랑 놀고 싶었는데 못 논다는 거였다. 학교에서처럼. 그 후에 나와 남편은 좀 더 적극적인 부모가 되었다. 플레이데이트 신청도 하고, 한 아침 등원 그룹에 아이를 밀어 넣었다. 그 이후에 같은 문제는 아직까지 없었다.


선생님은 아마 몰랐던 듯하다. 등원 그룹의 다른 아이 둘은 워낙 어릴 때부터 친구라 율이가 베프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하시며, 현재 짝꿍인 M과 잘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이 작성한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보며 하나씩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가 따로 코멘트를 할 게 없고, 모든 부분에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단 한 가지, 수업시간에 너무 떠드는 것 빼고.


학부모 상담을 준비하면서 율이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독일어 수업은 어떠니, 수학은, 체육은, 음악은? 그러자 율이가 대답했다. “엄마, 가서 놀라지 마. 나 수업시간에 떠들어.”


짝인 M이랑 둘이 수업시간에 엄청 수다를 떤다고 한다. 한창 친해질 때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 하지만 주의력이 떨어져서 과제 수행을 꼼꼼하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둘이 똑똑해서 수다를 떨면서도 자기가 한 말은 다 듣고 있더라며. ‘머리는 뛰어나지만 산만합니다’의 전형인가.


그 외에도 동양인이라 아이들에게 놀림받지는 않는지, 간식 시간이 짧다고 하는데 방법이 있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나쁜 말을 배워올 것 등의 고민과, 독일어 시간에 천천히 말해야 해서 재미없다고 한 율이의 피드백도 솔직하게 전했다.


선생님은 이 반에는 다양한 나라의 아이가 있다고 했다. 출신의 다름 뿐 아니라 체형의 다름, 배우는 속도의 다름, 취향의 다름 등 다양한 다름이 있고, 아이들이 그 다름을 지적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하셨다. 배 고프지 않는 것은 중요하고, 운동장에 나가는 시간에 도시락을 가지고 가도 된다고 하셨다. 독일어 시간에 천천히 읽는 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서인데, 율이처럼 잘하는 아이들이 천천히 읽어줌으로써 그 아이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안 좋은 말은 아이들을 통해 당연히 알게 될 거예요. 중요한 것은 율이가 그 걸 사용하느냐죠.”

나의 고민을 꿰뚫어 보신 선생님. 신뢰도 상승이다.


30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선생님의 말을 99% 알아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조리 있게 전달했다. 내가 아이 양육 관련 독일어는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선생님이 내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해 주셨다는 생각이 자고 일어나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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